근대5종 경기를 하는 사람은 경기에서 승리를 하든 못하든 만능 스포츠맨이다. 중세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는 “가장 완벽한 스포츠맨은 5종 경기를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5종 경기는 체력과 스피드가 경기인의 신체 속에 가장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게 하는 경기이기 때문이다.

김명건은 제주가 낳은 대한민국의 철인이다. 그에게는 ‘아시아 최고의 철인', ‘한국 제1의 철인', ‘한국 근대5종의 대들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 다닌다. 특히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근대5종에서 개인 금메달을,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획득함으로써 선수로서 절정기를 맞게 된다.

1970년 제주시 도두동에서 물질을 하는 양재순씨의 2남2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난 그는 도두 바닷가가 놀이터였다.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레 억센 기질과 강인한 정신력이 키워졌다.

김명건은 도리초등학교 4학년 때 수영과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1982년 제11회 전국소년체육대회 수영에서 남자 초등부 계영 400m에서 금메달을, 자유형 100m에서 은메달을 따 유망주로 떠오른다.

김명건은 오현중으로 진학한 후 제13회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 시범종목으로 치러진 근대2종(수영·육상)에 참가해 단체우승을 차지하며, 철인 탄생을 예고한다.

특히 국가대표 상비군에 발탁되면서 본격적인 근대 5종(펜싱·수영·승마·사격·크로스컨트리) 훈련을 시작, 철인의 꿈을 키워 나간다. 한국의 근대5종은 82년 9월 중앙연맹이 창설돼 신인선수 육성에 나선 때여서 김은 초창기부터 선수로 활약하게 된 것이다.

김명건은 오현중 3학년 때 국가대표로 발탁된다. 특히 그 해 일본에서 열린 도쿄선수권대회에서 4500점을 돌파,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세계주니어선수권 출전권을 따내 세계무대로 진출한다.

김명건은 86년 오현고에 진학한 후 제21회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25위를 했고, 그 해 제1회 아시아선수권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정상에 올랐다. 87년 세계주니어선수권에서는 랭킹 10위에 올라 세계의 철인 대열에 합류했다.

그러나 시련도 있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1년여 앞두고 간염증상을 보여 선수촌에서 퇴촌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강한 정신력으로 간염을 극복하면서 제주선수 가운데 고교생의 신분으로 올림픽에 참가하는 감격을 누리게 된다. 경기 결과는 12위. 한국 선수 가운데 가장 좋은 성적을 기록함으로써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의 기록행진은 계속됐다. 89년 한국체대로 진학 한 후, 제3회 아시아대회와 제1회 범태평양선수권대회에서 4관왕에 오르는 쾌거를 일궈낸다.   

그러나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38위의 부진과 함께 허리를 다쳐 또 한차례 고전을 하게 된다.

타고난 승부 근성을 발휘한 김은 다시 재기에 성공, 94년 상무에 입대하면서 안정을 찾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개인 금메달과 단체 은메달을 획득한다. 특히 근대5종 경기는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처음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것이어서 아시안게임 근대5종 제1호 금메달리스트로 영원히 기록되는 영광을 안게 됐다.

김명건은 이에 따라 1995년 대한근대5종연맹 정기총회에서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한다.

그는 군 전역 후 제주도 근대5종 바이아드론 경기연맹 총무이사 겸 코치, 경북도청 코치를 거쳐 2002년 6월부터 경북 경산시청 근대5종 팀 창단과 함께 코치 겸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이미 서른을 넘긴 나이지만, 2002년 제13회 문화관광부장관기 근대5종 경기대회 일반부 4종 단체전 우승과 지난 4월 제20회 회장배 전국 근대5종 경기대회 단체전에서 우승을 일궈냈다.

그는 이제 지도자로서 본격적인 수업을 쌓고 있다. 아시아 최고 철인의 불꽃 투혼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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