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지금도 파친코하면 곧 폭력단(야쿠자)과 재일동포를 연상하고 있다.

재일동포 경영인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폭력단이 경영에 직접 참가하는 예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파친코 홀(점포)은 풍속(風俗)영업에 속하며 허가제로서, 경찰청의 관리하에 각 도후켕(都府懸)의 경찰공안위원회에서 영업 허가를 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엄격한 심사를 걸쳐서 영업을 하는 파친코 경영에 불법 단체인 폭력단의 개입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다만 음성적으로 경영 대리인을 두고 막후에서 폭력단이 움직일는지 모르지만 폭력단 근절과 자금 루트를 차단하는데 혈안이 된 경찰이 눈을 피하기는 지극히 어렵다.

파친코 홀과 파친코기(機 )만드는 메커 경영인에 재일동포가 많은 이유는 일본인들이 대중 오락 문화인 파친코 유기(遊技)를 선호하면서도 경영면에서는 도외시했던 점이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이다. 즉 경영에 귀천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한화 296조원 산업이라는 파친코 업계는 재일동포와 재일중국인은 물론 일본인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파친코 홀은 작년 12월 말 현재 일본 전국에 1만4246개소(슬로트 머신은 1만5389개)의 홀이 있다.

도박성이 강한 파친코이지만 일본의 대중 오락 문화로서 없어서는 안될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참가인원도 지금은 1740만명이라고 하지만 절정일 때는 3000만명이었다고 한다.

물론 도박성이 빚는 사행심으로 인해 파친코 의존증과 경제적 부담으로 가정 불화를 일으키는 요인도 있지만, 이러한 마이너스 부분보다 일본 사회의 오락 문화에 끼치는 기여도는 단연 톱을 차지하고 있다.

또 파친코 업계가 중심이 돼서 벌이고 있는 이익금의 사회 환원은 당연한 사실로 받아 들이고 있는 점이다. 사회와의 공생 차원에서 파친코 문화를 건전 오락으로 발전 시키기 위해 각종 심포지움과 각 지역별로 전문가들과 심도 있는 논의도 벌이고 있다.

아주 협의적인 의미에서 필자가 아는 재일동포의 파징코 홀 경영인을 예로 든다면.

현재 민단 중앙본부 부단장인 김기주(金基周·70)씨는 오오사카후 사카이시에 거주하면서 이 지역을 중심으로 10여군데의 홀을 경영하는 '챤스그룹'의 회장이다.

김 회장은 사카이시에 있는 재일동포 양노원 '고향의 집'의 증축 때는 '증축 건설 위원장'직을 맡고 재정면에서 노력했고 십년 전 코오베 대지진으로가장 큰 피해를 입은 동포 밀집 지역 나가다(長田)쿠에 5년 전에 '고향의 집 코오베'건설 때에는 '전국 건설 위원장'직을 맡고 많은 기여를 했다.

또 1994년도 부터는 오오사카에 있는 민족학교 '백두학원' 부이사장직을 지금까지 맡으면서 재정적인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한국 국내 활동으로서는 1999년 '한국 JC 특우회' 회장(중앙)을 역임했으며, 지금은 당회 장학재단 이사로서 활동하면서 국내 장학 사업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특우회 회장 당시(1999년)의 9월에는 당회 '우정의 날'을 서귀포시에서 개최했는데 단독 행사로서 3000명 이상이 모인 것은 그 당시 서귀포시로서는 처음이었다고 한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여담이지만 서귀포시에서 개최했다는 사실이 제주도민의 한사람으로서 필자도 흐뭇했었다.

이렇게 김 회장의 굵직한 사회 활동 몇 개만을 예로 들었지만 조그마한 지역 사회 기여도는 헤아릴 수 없다.
 
이것은 김 회장 혼자 힘으로 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창업 때부터 회장의 오른팔로서 그야말로 생사고락을 같이한 일본인 사장 미야노 무네오(宮野 膺男·58)씨의 뒷받침의 결과였다.
 
이렇게 파친코 홀의 이익의 사회 환원은 개인적으로는 물론 동 업계가 독자적으로 만든 사회 복지 단체를 통하여 시냇물처럼 흐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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