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의 와중에 떨어지는 돌무더기에 등을 다쳐 평생 굽은 등으로 살아가는 강양자 할머니의 생애를 담은 그림 에세이가 출간됐다.

4‧3은 강 할머니에게 몸의 장애를 남겼을 뿐 아니라 평화롭던 유년을 앗아갔으며, 평생 고통과 고립 속에 살게 했다.

인동꽃을 팔아 5환을 번 것이 유일한 경제생활이었던 할머니는 누구보다 독립적이고 당당하게 살고 싶었던 여성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냉정하고 가혹했다. 평생 아픈 이별을 차례로 겪고 후유장애인 불인정 판결로 상처받았으며 웅크린 몸처럼 마음을 다친 채 살아가야 했다.

그런 할머니의 간절한 소망은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는 것이었다. 힘든 생애를 견디게 했던 유년의 풍경을 그림으로 그리고, 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글로 쓰는 것이 할머니에게는 또 다른 ‘인동꽃’이었다.

여러 사람들의 관심과 정성으로 할머니를 도왔다. 평소 엄청난 양의 독서와 글쓰기를 하는 할머니의 기록을 다듬고, 직접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돕고, 후원과 펀딩으로 책을 완성한 것이다.

5부로 구성된 이 책은 1부 ‘제주 산촌의 추억’이란 타이틀로 4‧3 이전의 평화로운 유년을 추억한다. 2부 ‘4월의 아픔을 등에 지고’에서는 평생의 상처가 된 4‧3을 다시 아프게 반추한다. 3부 ‘그리운 사람’에서는 부모와 정인, 그리고 소중한 딸의 이야기를 담았다. 4부 ‘4월의 인사’에서는 할머니가 바라본 4‧3을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5부 ‘세상을 만나고 나를 만나고’에서는 이런 모든 아픔에도 불구하고 한 발짝씩 다시 세상으로 다가서는 할머니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1942년경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강 할머니는 종전 직후 부모와 함께 제주로 귀향했지만 딸을 남겨두고 부모는 다시 일본으로 밀항했다. 그 후 외가에 맡겨져 7세 때 4·3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부모를 대신했던 외가 식구들은 모두 희생되고 강양자는 부상을 당해 굽은 등의 척추장애인이 되었다. 외가 가족 모두 4·3 희생자로 인정되었지만 강양자는 후유장애를 인정받지 못했다.

몸과 마음에 새겨진 4·3의 트라우마로 평생을 집 안에서 자폐적으로 살아오다 노년에 이르러서야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닫힌 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조금씩 나오게 되었다. 현재 제주 탑동에서 혼자 살며, 이 책을 통해 세상과 다시 만나기를 소망하고 있다.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