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지방법원. (사진=박지희 기자)
제주지방법원. (사진=박지희 기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3명에 대한 국민참여재판 실시 여부를 두고 검찰과 피고인 측 변호인 간의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진재경 부장판사)는 24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고창건(53) 전국농민총연맹 사무국장과 진보당 제주도당 박현우(48) 위원장, 강은주(53) 전 위원장에 대한 공판준비기일을 열었다.

예정대로라면 이날 재판은 공판기일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사흘 전인 21일 피고인 측에서 국민참여재판(이하 국참) 의사를 밝히면서 증거조사 방법이나 쟁점사항 등을 정리하는 공판준비기일로 변경됐다.

이들 3명은 북한 지령에 따라 제주도내 이적단체 'ㅎㄱㅎ'를 결성·운영하면서 국가 안보에 위해를 가한 혐의를 받고 있다. 피고인 출석이 필수 조건이 아닌 만큼, 피고인 측에는 고부건 변호사만 법정에 출석했다.

피고인 측 "일반 국민 시각으로, 반국가단체 판단해야"

피고인 측은 법조인이 아닌 일반 국민의 시각에서 북한이 '반국가단체'에 해당하는지 국참을 통해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고인 측은 "국가보안법에서는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과거 판례에 의해 규정되고 있는데, 그것이 현재까지 유효한지 의문이 든다"면서 "판례에 따르면 1970~1980년대 공산주의 국가를 반국가단체로 규정, 상당수의 사람들이 처벌 받았다. 2023년을 살아가고 있는 평균적 국민의 시각으로 판단,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국보법 위반이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와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든다"면서 "특히 제주에서는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가 상당히 많아 직업법관이 유죄로 판단해도 도민사회에서 납득하기 어려워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또 검찰은 공소장 일본주의에 반하는 공소장을 제출, '예단 형성 배제'라는 취지는 무너져 내렸다. 배심원들에게 유의미한 증거들만 제공해 우려도 불식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공소장 일본주의란 공판기일 이전에 증거능력 없는 증거를 제출하는 식으로 법관에 선입견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법률상 원칙이다.

검찰 "추가 수사 진행 등 적절치 않아" ... 변호인 재반박

반면, 검찰은 적절치 않다고 반박했다. 증거기록이 1만여쪽에 달하고, 배심원들이 법적 쟁점에 대해 정확한 이해가 어려울 수 있다는 등 이유를 들었다.

검찰은 "범행 특성상 수사법이 허용되고, 국정원 등 수사관의 신분이 노출되면 안되는 상황이다. 국참 시 다수 사람들에게 노출돼 안보 위협을 초래할 수 있다'면서 "증거기록도 1만여쪽에 달해 장시간 심리가 진행될텐데, 건강 상 악화 상태에 있는 강은주 피고인에 피해가 있을 수 있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ㅎㄱㅎ' 관련 추가 공범에 대해 수사가 진행중인 점, 배심원 일부가 사임할 가능성도 고려돼야 한다"고 반박했다.

피고인 측은 이에 검찰 측이 의도적으로 기록을 방대히 늘렸다고 주장하며 재반박했다. 아울러 수사정보 누설 등에 대해서는 대안이 있기에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 권리가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고인 측은 "배심원 불출석 우려는 모든 국참에 내재한 문제며, 방대한 증거기록은 불필요한 증거를 없애 상당히 줄일 수 있는 내용"이라면서 "구두변론을 제대로 구현하고자 하는 게 국참의 취지다. 회계 사건 처럼 쟁점도 복잡하지 않아 일반인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며, 추가 공범에 대해서는 구속 수사를 진행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이들 3명 피고인 측은 아울러 당사자와 변호인단 등이 공소장을 제대로 읽어보거나 증거물들을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았다고도 호소했다. 지난 5일 검찰 기소 후 일주일 뒤인 12일이 돼서야 공소장이 전달됐고, 이날까지 2주도 안되는 시간 밖에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

공안탄압저지 및 민주수호 제주대책위는 24일  제주지법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안탄압저지 및 민주수호 제주대책위는 24일  제주지법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재판부는 국민참여재판을 수용하고,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방어권을 보장하라"고 촉구했다.(사진=박지희 기자)

기일 선정도 난항 ... 방청석 항의도

이때 재판부가 다음 공판기일을 준비하면서 변호인 측과 의견이 좁혀지지 않는 상황도 벌어졌다. 재판부가 "일정을 조율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제시한 날짜가 고 변호사의 일정과 겹쳤던 것.

월·목요일 재판을 진행하는 제주지법 제2형사부는 오영훈 제주지사의 공직선거법 및 정치자금법 위반 관련 재판도 맡고 있다. 이 사건의 증인은 20~30명에 달해 현재 격주 목요일마다 증인신문이 이뤄지고 있다.

재판부는 "해당 사건도 사안이 시급해 미룰 수 없다. 일단 기일을 정해두고, 그동안 대안이 나오면 조율하는 게 어떻냐"고 하자 고 변호사는 "그날 육지부 법원에서 강 피고인과 연관된 사건 변호를 맡아 곤란하다. 재고해달라"고 팽팽히 맞섰다.

검찰도 여기에 "해당 사건에는 다른 변호인이 있고, 심지어 고 변호사는 기소된 이후 선임된 것으로 안다. 재판을 늦추려는 의도 등이 아니라면 공통변호를 하겠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냈다.

'공안탄압저지 및 민주수호 제주대책위(이하 대책위)' 관계자가 이 과정에서 "일방적 진행"이라며 언성을 높이다 제지당하기도 했다.

피고인 측도 "재고해달라"고 재차 요구했지만 재판부는 앞서 제시한 오는 15일 다음 재판을 열기로 했다.

한편, 이 사건에 대해 '공안탄압'이라며 규탄 입장을 내고 있는 대책위는 이날 재판이 열리기 전 제주지법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재판부는 국민참여재판을 수용하고,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방어권을 보장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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