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길목이다. 봄이 언제 왔냐싶지만 바로 무더위와 싸워야하는 여름이 와버렸다.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심각한 상황이기도 하거니와 날씨는 극단을 달린다. 6월로 접어든 요즘 아직도 밤 기온은 서늘하다 못해 춥다 느낄 정도로 낮고 낮에는 한여름을 방불케 할 정도로 기온이 높기도 하다.
게다가 올 해는 잦은 비가 말썽이다. 밤 기온이 오르지 않아 익어야 할 보리가 익지 않고 비가 잦아 수확을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보리수확을 하고나서 6월 하순경 장마 즈음에 콩을 파종해야 할 텐데 현재의 기상상태로는 보리수확을 언제쯤 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먼저 수확을 마친 보리밭도 작황이 좋지 않다.
보리가 누렇게 익어갈 때쯤이면 겨울을 난 여러 가지 풀들도 보리처럼 수명을 다해 누렇게 변한다. 봄이 되면서 성장세를 키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풀들은 다음 생을 기약하며 생을 마감한다. 겨울풀이 생을 마감하는 아래에는 새로운 여름풀들이 새싹을 내밀고 한여름 뜨거운 태양아래에서 자랄 준비를 하고 있다.
겨울 풀과 여름풀이 교대하는 그 시기에 우리는 새로운 작물을 길러내도록 작기를 맞춰본다. 억세기만 하던 겨울 풀들이 뿌리부터 스르르 힘을 놓고 세상과의 끈을 놓을 때 준비해 둔 모종을 드려놓는다. 새로운 풀들이 아직 자리 잡기 전 빠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직파보다는 모종이 훨씬 유리하다.
아직 이런 시기를 잘 포착하는 것이 어렵기만 하다. 자연재배의 여러 원리들 중에 무제초의 원리는 아직도 난해하기만하다. 제주도에 살고 있는 한 이해하기 힘든 것은 아닌가하는 의심도 해본다. 사시사철 이름 모를 풀들이 나고 자라는 모양을 보고 있노라면 언제쯤이 우리가 키워낼 작물이 들어갈 시기인지 애매하기만 한 것이다.
봄이 지나는 시기에 겨울풀이 사그라드는 것, 그리고 가을이 깊어지면서 여름풀이 사그라들 때 정도는 알 수 있으나 그때와 내 작물의 작기가 딱 맞아 떨어지는지도 짧기만 한 내 농사경력으로는 가늠하기 어렵다.
내 농사방식에 맞춰 수월하게 하기위해 지피작물을 길러 내는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풀들이 언제 생명을 다 하는지는 알기 어렵지만 보리가 생명을 다하는 시기는 언제인지 명확하므로 내 작물이 들어갈 시기를 잘 맞춰 보리가 생명을 다 하도록 해 주면 작물에게도 좋지만 풀 관리도 수월해진다. 아직 지피작물을 키워본 적이 없어서 관심이 가는 부분이다. 호밀이나 보리를 키워 베어 눞힌 자리에 모종을 심는 방법도 좋다.
생강농사하는 언니는 생강을 심기전 보리를 파종하고 그 자리에 씨 생강을 심는다. 생강싹이 트는데 한달 정더 시간이 걸리는 데 그 사이 보리는 푸르게 올라온다. 생강싹이 올라오고 보리는 생강에게 그늘을 제공한다. 생강싹이 안정적으로 잘 자라기 시작하면 보리를 그대로 베어 멀칭재료가 된다.
생강밭의 보리는 생강에게 그늘을 제공해 주고, 멀칭재료가 되고, 풀을 제압하는 도구가 되며 자라는 동안에는 양분이 되어주기도 한다. 온도를 적당하게 유지해 주고 수분을 적절하게 유지해 주기도 하니 보리 하나 키워 여러 가지로 좋다.
어러가지 풀들이 자라는 대로 두었다가 베어 눕히거나 사그라들기를 기다렸다가 작물을 파종하곤 했는데 올해부터는 지피작물을 심어봐야겠다. 보리나 밀, 메밀등을 파종하였다가 작물을 심기전에 베어 관리하는 것은 여러모로 좋을 듯 하다.
전업농이 된 지 4년 차. 농민으로 살면서 느끼는 일상을 가볍게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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