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진주의료원 폐쇄, 2015년 메르스 사태 등을 겪으면서 공공의료 필요성과 확충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특히, 공공의료 기반 확충은 COVID-19 대확산을 계기로 그 중요성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의료민영화의 첫걸음이 될 영리병원 불씨가 제주도를 넘어 강원도까지 번지는 상황. 이에 제주투데이와 의료연대본부 제주지부는 지역 차원에서 의료공공성을 강화할 수 있는 정책 방향성과 대안을 10차례에 걸쳐 모색한다. <편집자주>

양동혁 의료연대 서귀포의료원 분회장
양동혁 의료연대 서귀포의료원 분회장

저는 서귀포의료원에 다니는 20년차 물리치료사이자, 노조 분회장입니다. 대부분의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서귀포에서 나고 자란 서귀포 토박이입니다. 부모님, 친지들, 친구 모두 서귀포 주민들이라 어릴 때부터 서귀포의료원을 자주 이용하고, 의료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자랐습니다.

노조대표를 맡으면서 시민들의, 도청이나 유관기관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많았습니다. 전국 지방의료원을 찾아다니기도 하고, 보건의료계획수립 공청회에 참석도 하고 보건의료정책에 대해 듣고 배우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에는 35개 지방의료원이 있습니다. 실제로 지방의료원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각각 지방의료원이 처한 모습은 천차만별입니다. 대도시 대형병원 옆에서 공익적 역할만 담당하는 의료원도 있고, 인구가 수 만명 밖에 되지 않는 지방에서 유일한 병원으로서 기본적인 역할을 하는 것도 버거워하는 곳도 있습니다. 35개 지방의료원은 다 같은 지방의료원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역할과 조건은 제각각인 형편입니다.

서귀포의료원의 경우, 20만에 가까운 인구의 유일한 종합병원입니다. 공익적 역할과 급성기병원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전국에 많지 않은 지방의료원입니다.

공익적 역할, 의료원 존재 이유

서귀포의료원은 2013년 230병상으로 신축 이전,  현재 288병상 규모를 갖춘 종합병원으로 성장했습니다. 고령화 사회에 필수인 재활의학과, 안과등을 신설하고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일찍 도입해 '보호자 없는 병동'으로 주민들의 편의에 도움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해녀 잠수병 센터 ▲저소득층 환자 의료지원 사업 ▲취약계층 무료 순회진료 사업 ▲만성질환 및 치매환자관리 등의 보건의료사업 등 민간병원에서는 적자를 이유로 할 수 없는 공공의료의 영역을 산남지역에서 유일하게 맡고 있습니다.

특히 야간투석실 운영이나 24시간 분만 가능한 병원 같은 시스템은 서귀포 시민들에게 반드시 필요합니다. 공공병원이 아니면 적자를 이유로 절대 할 수 없는 중요한 공익적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전국에 있는 35개 지방의료원과 비교하면 지방의료원 중 상당히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곳 중 한 곳입니다. 보건전문가들에 따르면 병원의 규모는 해당 병원을 이용할 수 있는 인구수와 직결됩니다. 서귀포시 18만명 인구를 감안하면, 서귀포의료원이 이만큼 규모 있게 성장하고 운영되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라는 평가입니다.

서귀포의료원.
서귀포의료원. (사진=제주투데이DB)

시민들이 바라는 급성기병원

하지만, 저 역시도 이곳이 시민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바라는 모습은 공공의료뿐만 아니라 산남지역의 유일한 종합병원으로서의 질 높은 의료시스템 일 것입니다. 의료원에서 치료를 마치지 못하고 결국 타 병원으로 보내진다는 불만을 많이 접하곤 합니다. 휴진하는 과도 많고, 간혹 직원이 불친절하다는 이야기도 듣곤 합니다.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시민들의 눈에는 부족하기만 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병원의 의료의 질과 시스템을 높이는데 왕도는 없습니다. 한번에 해결되는 방법도 없습니다. 그런 방법이 있다면 전국 35개 지방의료원들이 대부분 그렇게 하고 있을 테니까요.

지금의 서귀포의료원은 시민들의 요구와 바람에 부합하고자 부족한 병상 수도 확보해 나가고 있습니다. 현재 약 300병상에서 100병상을 늘여 400병상 규모로 증축하는 공사가 2024년을 완공 목표로 시작되됐습니다. 2035년까지는 500병상 규모로 키우겠다는 중장기 계획도 수립 중입니다. 진료부서는 늘리고, 단수 진료과는 줄이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입퇴원 문제도 제주대병원에 비해 평균재원일수가 2배나 깁니다. 산남 지역에 재활환자를 위한 권역재활병원 이외에 입원 시설이 거의 없기 때문에 수익에 상관없이 의료원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를 낳으러 제주시로 가는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산부인과 및 산후조리원을 운영 중이며, 특히 산후조리원에 대한 만족도는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2024년에는 100병상 규모의 서귀포의료원 부설 요양병원을 신축, 그동안 요양병원이 없어 힘들었던 어르신과 가족분들의 불편함이 조금이나마 나아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조금은 더디지만 점진적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병원 노동자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병원은 1년 365일 24시간 운영되는 곳입니다.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병원 구성원 중 누군가는 명절에도 주말에도 일을 하고 누군가는 밤을 새며 근무합니다.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레벨D(방호복)를 입고 벗을 시간이 없어 화장실을 안 가려고 일하는 내내 물을 안 마셔요." 

"(우크라이나 전쟁 이야기에) 전쟁 났다고 간호사가 피난 가면 응급실 환자는 누가 봐야하죠?” 

노조 대표로서 조그만 바람이 있다면 병원 구성원들의 노력과 진심 어린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아주는 것입니다.

서귀포시는 2021년에 이미 UN이 규정한 65세 이상 인구가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화사회가 되었습니다. 그만큼 이제 공공병원의 사회적 역할이 더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서귀포의료원의 구성원들은 더 나은 공공병원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10년 후, 20년 후 점점 발전하는 병원이 되길 모두가 바라고 있습니다. 지역 사회와 행정의 노력 없이는 달성하기 힘든 목표입니다.

중장기 발전방안에 대해 확실히 계획을 잡고 도청과 도의회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서귀포의료원은 분명 더 좋은 병원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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