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AK플라자 백화점 일대에서 최원종씨가 시민들을 향해 흉기를 휘두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KBS뉴스 영상 갈무리)
지난 3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AK플라자 백화점 일대에서 최원종씨가 시민들을 향해 흉기를 휘두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KBS뉴스 영상 갈무리)

제주에서도 발생한 ‘묻지 마 범죄’

망조가 들었다. 위기 때마다 정부는 하는 일이 없다. 남 탓과 하위 공무원에 대한 책임 추궁뿐. 그러니 ‘각자도생’이 시대의 규범이 되어버렸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나 세계잼버리대회 사태만이 아니다. 칼부림도 난무한다. 서울 신림동 살인사건, 분당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 같은, 소위 ‘묻지 마 범죄’도 횡행한다. 불특정 다수를 겨냥해 저지르는 범죄다. 그러니 예측도 어렵고, 누구나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제주도도 예외는 아니다. 일면식도 없던 사람의 얼굴을 돌멩이로 가격하고 도주하다 체포된 20대가 있었다. 제주시청 인근 도로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또 있다.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 노인들을 밀치고 폭행해 넘어뜨린 자가 체포되었다. 지난달 제주시 삼화지구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 역시 특별한 이유 없이 행한 범죄다.  

물론 타 지역만큼 끔찍한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범죄·생활안전 분야의 안전지수가 8년 연속 최하위 등급을 기록한 게 제주도다. 특히 살인, 강도 등의 5대 강력 범죄지수는 17개 시도 중 유일하게 5등급을 받았다. 그러니 제주의 ‘묻지 마 범죄’도 언제 어떻게 흉포해질지 모른다.  

이처럼 ‘묻지 마 범죄’가 잇따르자 ‘국민의힘’ 지도부가 대책을 내놨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신설하고, 흉악 범죄자 진압 과정에서 현장 경찰관의 면책권을 강화하기로 한 것이다. ‘국민의힘’다운 대책이다. 작용에 따른 즉흥적, 단세포적 반작용이다. 고민의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사회 구조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 예측했던 그대로 결과 중심의 대책이다. 원인에 대한 진단이 없다는 말이다. 

지난 7일 김기현 국민의힘 당대표가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를 찾아 '강력범죄 대책 마련'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국민의힘 오른소리 유튜브채널 영상 갈무리)
지난 7일 김기현 국민의힘 당대표가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를 찾아 '강력범죄 대책 마련'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국민의힘 오른소리 유튜브채널 영상 갈무리)

 

묻지 않아서 생기는 ‘묻지 마 범죄’

서울 신림동에서 일면식도 없는 행인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두른 33살 청년,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탓하며, 다른 사람들도 불행해지게 만들고 싶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분당 서현역 주변에서 흉기 난동으로 14명에게 중상을 입힌 청년은 고학력 중산층 집안에서 자란 영재 출신이라고 한다. 하지만 특목고 진학에 실패하면서부터 ‘조현성 인격 장애’를 겪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건 직후 경찰 조사 과정에서 알려진 사실들이다. 경찰은 처벌과 함께 이면에 숨겨진 원인을 추적하고 있다. 그래서 공식 명칭부터 바꿨다. ‘이상 동기 범죄’라고 새롭게 명명한 것이다. 물론 ‘이상 동기’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정의하진 못했다. 하지만 사건 이면의 본질적인 문제를 파악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 원인에 대한 진단이 있어야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위 두 사람의 진술과 성장 배경을 살펴보자. ‘좌절’, ‘고립’, ‘청년’, ‘사회에 대한 불신’, ‘자신보다 잘 나 보이는 사람들에 대한 질투와 분노’ 등의 단어들을 떠올릴 수 있겠다. 이런 단어들은 주로 사회 불평등과 양극화 심화에 따른 경제적 빈곤, 사회적 단절, 상대적 박탈감에서 출발한다. 

너무 뻔한 이야기인가? 그렇다. 이것은 내가 내린 진단이 아니다. 사회가 이미 알고 있는 원인들이다. 정책 입안자들도 사실은 다 알고 있다. 그런 만큼 대책도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다. 답이 이미 나와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묻지 않는다. 동기와 원인을 자꾸 물으면 사회를 바꿔야 한다. 불평등을 없애고, 양극화 구조를 타파해야 한다. 기득권자들은 그게 싫은 거다. 불평등을 심화시킨 게 그들이지 않은가? 청년들이 좌절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를 만든 게 그들이지 않은가? 원인 제공자들은 원인을 묻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묻지 못하게 차단한다. 그리고는 단지 결과만을 놓고 단죄하려 든다. 

결국 ‘묻지 마 범죄’는 묻지 않아서 생긴 범죄임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계속해서 물어야 한다.  

대학수학능력 시험 고사장 자료사진. (사진=제주투데이DB)
대학수학능력 시험 고사장 자료사진. (사진=제주투데이DB)

 

병든 공교육이 낳은 두 방향의 괴물들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묻는 능력을 이미 상실했을지도 모른다. 학생 때부터 그랬다. 학교가 인격 도야와 자아실현의 장이 아니라 단지 출세를 위한 도구가 된 때부터 그랬다. 질문은 위험했다. 오로지 암기라야 했다. 의문 제기가 아니라 순응과 순종만이 답이었다. 또한 삶의 의미를 묻는 건 이단이었다. 필요한 건 고득점뿐이었다. 그리고 그 고득점은 돈과 권력으로 이어졌다. 

데카르트는 의심하고 또 의심해서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단계에 도달하는 방법으로 진리를 추구했다. 끝까지 의문을 제기하는 방법, 즉 이성의 힘을 중시한 것이다. ‘신의 뜻’이 아니라, ‘인간 이성’으로 진리를 찾은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온 데카르트의 명제가 ‘고기토 에르고 섬(cogito ergo sum : 나는 회의한다. 고로 존재한다)’이다. 끝까지 의심하고 질문을 던지라는 것이다. 이게 근대적 합리성이다. 

그러나 한국의 공교육은 데카르트를 죽여 버렸다. 참된 삶이 어떤 것인지를 묻는 질문은 사라지고 살벌한 경쟁만이 남았다. 패자 부활전은 없다. 대학 입시 하나로 인생의 절반 이상이 결정된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안전망도 없다. 각자도생이니 남을 밟고 올라서야만 한다.

이런 교육에서 두 방향의 괴물들이 탄생했다. ‘이상 동기 범죄’로 내몰린 청춘들이 그 첫째다. 앞서 말한 칼부림 청년들의 경우다.

또 하나는? 성적 향상에만 사활을 걸었던 고득점자들이다. 삶의 의미를 묻지 않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고민하지 않고, 오로지 돈과 권력을 향해 뛰었던 자들이다. 그들은 결국 높은 지위와 돈과 권력을 쥐었다.  

데카르트의 초상. 1648년 Frans Hals 작. 루브르미술관 소장.
데카르트의 초상. 1648년 Frans Hals 작. 루브르미술관 소장.


질문을 막는 자가 ‘묻지 마 범죄자’다

시험 성적이 높으면 인품이 뛰어난가? 시험 문제 잘 풀었다고 국가 운영을 잘한다는 보장이 있는가? 시험 성적과 사회문제 해결 능력이 비례하는가?

아니다. 이건 별개의 문제다. 재난 상황에 대처하는 고위 관료들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공감 능력도, 위기 대응 능력도 없다. 그런데도 고득점자라는 이유만으로 돈과 권력을 쥐고 있다. 이게 한국 사회 시스템이다. 물론 정당하지 않다. 이런 부당한 시스템 안에서 ‘갑질’이 자라난다. ‘갑질’은 더불어 사는 사회에 대한 공감 능력이 모자란 자들이 해대는 잘난 짓이다.

권력을 가질 경우 특히 그렇다. 권력을 사유화한다. 국민이 위탁한 게 아니라, 자신이 획득한 전리품이라 여긴다. 그러기에 자신의 능력을 절대화하고, 그만큼 국민들을 개돼지 취급한다. 능력에 따른 당연한 질서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국민들의 정당한 질문을 막는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게이트가 불거졌을 때, 국토부 장관 원희룡은 눈에 힘을 주며 버럭 화를 냈다. 질문하는 국민들을 ‘거짓 선동자’, ‘괴담 유포자’, ‘날파리 선동꾼’으로 규정하며 겁박한 것이다. 묻지 말라는 의도다. 

세계잼버리사태에서도 그랬다. 그들은 언론의 취재를 제한했다. 취재 제한은 질문을 막는 행위다. 더하여 질문하는 사람들을 ‘반국가 세력’이라 칭했다. 이태원 참사, 오송 지하차도 참사에서도 그랬다. 역시나 ‘묻지 마’였다. 

의혹만 제기하면 ‘괴담’이라는 딱지로 돌아온다.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데카르트의 근대 이성이다. 반면 ‘괴담’은 미신적 중세 세계관이다. ‘근대 시민’을 ‘중세 농노’취급하겠다는 게 윤석열 정권이다. 

이건 범죄다.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범죄다. 국정 운영 과정에서 의혹이 제기되면 국민은 당연히 질문해야 한다. 근대 시민으로서의 당연한 권리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권은 국민에게 ‘묻지 마’를 강요한다. 

하여 다시 묻는다. ‘묻지 마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은 진정 누구이던가? 

이영권

역사사회학을 전공하고 《새로 쓰는 제주사》, 《제주역사기행》 등을 저술한 이영권 박사는 제주4.3연구소, 제주참여환경연대 등에서 활동한 바 있고, 일선 학교현장에서 역사 교사로 오랜 시간 교편을 잡았다. 2022년부터 제주투데이 논설위원으로 위촉된 이영권 위원의 칼럼은 매달 두번째 금요일 게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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