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한 공원 일대에서 여성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공원 여성살해 사건 피해자 추모 및 여성폭력 방치 국가 규탄 긴급행동’을 개최하고 있다. (사진=한국여성의전화 KWHL 유튜브 채널 방송 화면 갈무리)
지난달 24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한 공원 일대에서 여성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공원 여성살해 사건 피해자 추모 및 여성폭력 방치 국가 규탄 긴급행동’을 개최하고 있다. (사진=한국여성의전화 KWHL 유튜브 채널 방송 화면 갈무리)

지난달 24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한 공원에서 여성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공원 여성살해 사건 피해자 추모 및 여성폭력 방치 국가 규탄 긴급행동’을 개최했다. ‘성평등해야 안전하다’라는 슬로건은 그 자리에 모인 그리고 이와 뜻을 같이 하는 시민들이 한국 정부와 우리 사회에 강력하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이다.

현 정부는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 스토킹, 데이트폭력 사건뿐만 아니라 여성을 상대로 한 범죄들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음에도, 일관되게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라며 여성가족부를 중심으로 성평등 정책을 축소하고 있어 문제적이다.

안전 관련 경험과 인식에는 성별에 따른 차이가 존재한다

간혹 매스컴에서 관광이나 학업 등으로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여러 나라 중 한국을 선호하는 이유로 ‘좋은 치안’을 꼽아 이야기하는 것을 접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모두 남성이라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과연 여성들도 같은 생각일까? 여성들에게 안전과 치안의 문제는 남성들과 다르게 경험되기 때문이다.

2022년 기준 제주 도민의 안전에 대한 인식 실태를 살펴보면, “범죄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라는 응답이 여성 54.3%, 남성 40.8%로 여성의 범죄에 대한 불안이 남성 보다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야간보행에 대한 두려움(집 근처에서 밤에 혼자 걷기 두려운 곳이 있다)”에 대해서는 여성 48.5%, 남성 16.3%로 성별 차이가 매우 큰 것을 알 수 있다. 야간보행이 두려운 주요 이유는 “신문, 뉴스 등에서 사건, 사고를 자주 접하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제주지역 강력범죄 피해자 대부분이 여성인 현실과 관련되어 있다. 강력범죄 피해 자 중 여성 비율은 87.1%에 달한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언제라도 자신이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일상의 삶이 안전하지 않다고 느낀다. 10여 년 전 제주도에서 발생한 ‘올레길 여성 살해사건’으로 많은 여성들이 혼자 하는 올레길 트레킹을 포기해야 했다. 이번 ‘신림동 공원 여성 살해사건’은 여성들에게 얼마나 많은 일상을 주저하게 만들까?

제주지역 성별 야간보행에 대한 인식(2022)(표=2022 통계로 보는 제주 여성 가족의 삶, 제주여성가족연구원, 2022)
제주지역 성별 야간보행에 대한 인식(2022)(표=2022 통계로 보는 제주 여성 가족의 삶, 제주여성가족연구원, 2022)

무엇이 ‘평등’인가? 여성 정책은 특혜인가?

이번 서울 관악구 성폭행 살인 사건과 관련하여 최근 한 서울시 구의원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해 12월, 한 서울시 구의원이 ‘여성안심귀갓길’ 사업 예산을 삭감하며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고 자평한 바 있는데, 이것이 관악구 성폭행 살인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많은 시민들의 분노를 자아냈던 것이다. 해당 구의원에 따르면, 여성안심귀갓길 사업은 여성만을 위한 사업으로 남성들이 보호받지 못하기 때문에 구민 모두의 안심골목길 사업으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 청년 등 특정 대상 혹은 계층에 대한 정책은 특혜이고 공정하지 못한 정책인가? 이는 오랫동안 여성정책 및 성평등 정책에 따라 다닌 ‘역차별’ 논리와 유사하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정책을 특혜라고 바라보는 시각은 무한 경쟁을 강요하는 신자유주의적 발상(근대적 평등 사상)에 기반한 것으로, 기계적이고 형식적 평등 관점 즉 불평등한 구조에 대한 몰이해에 기반하고 있다.

여성단체와 시민들이 요구하는 ‘구조적 차별’에 대한 시각은 정치 영역이나 의사결정 단위에서 여성 비율이 지나치게 적은 현상처럼, 오랜 기간 누적되어 제도와 관행으로 구조화된 성차별을 의미한다. 이는 동등한 기회와 처우와 같은 기회의 평등만으로는 해결되기 어렵다. 이미 오랫동안 기울어져 온 운동장에서 같은 출발 선상에 선다고 하여 평등의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질적인 평등에 이르기 위해서는 성차별적인 법, 제도, 규범, 문화의 변화가 필요하다.

성평등해야 시민 모두가 안전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성폭력’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불평등한 성별 권력관계에서 발생하는 구조화된 폭력이다. 고로 우리 사회가 성평등해야 시민 모두가 안전할 수 있다.

 

강경숙.
대학 졸업 후 찾아간 여성단체 활동이 삶의 방향이 되었다. 여성운동을 더 잘하고 싶어서 여성학을 공부했고 이후 제주에서 여성주의 교육과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지역문제에는 젠더(여성)가 없고 젠더(여성)문제에는 지역이 없는 현실’에 대해 주목하고, 주변화된 위치에서 제주 사회의 성찰을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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