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28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이주가사.돌봄노동자 시범사업 저지 공동행동이 발족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한국여성노동자회 제공)
지난 8월28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이주가사.돌봄노동자 시범사업 저지 공동행동이 발족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한국여성노동자회 제공)

우리 사회의 저출생, 고령화, 경쟁사회와 같은 여러 현상은 궁극적으로 모두 돌봄문제이다. 돌봄의 문제는 더이상 ‘가족의 일’이 아닌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누구나 돌봄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돌봄을 책임지는 사람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은 거의 제기되지 않는다.

이는 돌봄정책의 양적 팽창에도 불구하고 국가, 시장, 가족의 여성에 대한 돌봄 의존이 변하지 않는 현실과 연결된다. 여성의 입장에서는 무급으로 수행하던 일이 저임금 노동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돌봄은 여성이 수행하는 무/저임금 노동이며, 돌봄 가치의 제고는 요원하다.

돌봄은 시장 논리로 해결할 수 없다

현재 저출생 대책의 일환으로 고용노동부와 서울시가 추진하는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 시범사업’이 논란이 되고 있다. 돌봄의 문제를 ‘비용 절감’이라는 시장의 논리로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패러다임에서 돌봄은 가치나 생산적인 활동이 아닌 비용이 되며, 이를 줄이기 위한 전략으로 돌봄은 ‘외주화’된다.

임신과 출산, 양육이란 아름답고 가치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가치절하되고 주변화된 일을 과연 누가 하고 싶어 할까? 이러한 방식은 돌봄노동의 가치를 더 저평가되도록 하며, 오히려 저출생 현상을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처럼 시장을 통해 돌봄을 해결하려는 움직임은 제주와는 먼 미래의 이야기일까? 특히, 비교적 공동체성이 강한 제주 사회에서 낯선 ‘동남아 이모님’이 입주하여 자녀들을 양육하고 돌본다는 것은 문화적으로 거부감이 생기는 일일지 모른다.
 

지난 18일 제주특별자치도는 제주혼디누림터에서 제주형 돌봄정책인 '제주가치 통합돌봄' 비전 선포식을 개최했다.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지난 18일 제주특별자치도는 제주혼디누림터에서 제주형 돌봄정책인 '제주가치 통합돌봄' 비전 선포식을 개최했다.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국가(지자체)는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

그렇다면 제주도의 돌봄정책은 어떠한가? 민선8기 오영훈도정은 핵심공약사업의 하나로 ‘제주형 생애주기별 통합 돌봄체제(가칭 820센터) 구축’ 사업을 제시하고 있어 돌봄정책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구체적으로 이 정책은 기존 대상별 돌봄정책과 연계하면서, 기존에 제공되지 않았던 가사 및 식사 지원 등의 돌봄 틈새를 매우거나 갑작스러운 사고 등 긴급 상황 시 돌봄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이 정책의 핵심은 읍면동지역까지 아우르는 서비스 전달체계의 통합적 운영에 있으며, 내용적으로는 일시적인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돌봄은 보다 일상적이며 관계적인 가치이며 활동으로, 가사, 간병, 양육 등 활동의 목적이 명확한 서비스로 정의될 때 ‘돌봄문제’는 해결되기 어렵다. 

이런 의미에서 국가(지자체)는 시민의 돌봄 필요에 대응하여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서, 시민들에게 돌봄 활동을 돌려주어야 한다. 그리고 민주주의 공적 토론의 주요 의제로서 돌봄 문제에 대처하는 국가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돌봄 시민과 돌봄 공동체

그러나 ‘돌봄을 받기만 했던 사람들’은 돌봄의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알기 어렵다. 돌봄은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인간의 권리로 설명할 수 없으며, 보다 일상적이며 관계적인 인간 활동이기 때문이다. 돌봄은 긴급한 상황에서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삶 자체이며 그 일상이 무너질 때 ‘위기’로 다가온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일상적으로 서로 돌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는 시민을 돌봄이 필요한 존재로만 바라보는 것을 넘어, 민주시민으로서 돌봄 책임의 배분과 참여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돌봄 참여 경험은 기존에 알지 못했던 돌봄의 중요성과 가치를 몸소 느끼게 함과 동시에 고정된 성별 분업을 변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돌봄 가치가 배제된 노동 중심의 직장 및 공동체 문화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돌봄 가치가 통합될 수 있는 지역사회의 변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 모두 동등한 시민으로서 돌봄에 참여하고 책임지는 돌봄 주체로서 존재해야 하며, 이는 결국 가족, 마을, 지역의 돌봄 공동체 형성으로 나아갈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현 제주도정은 도민에게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장기적인 관점에서 돌봄 시민과 돌봄 공동체 형성을 위한 지원을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



 

강경숙.
대학 졸업 후 찾아간 여성단체 활동이 삶의 방향이 되었다. 여성운동을 더 잘하고 싶어서 여성학을 공부했고 이후 제주에서 여성주의 교육과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지역문제에는 젠더(여성)가 없고 젠더(여성)문제에는 지역이 없는 현실’에 대해 주목하고, 주변화된 위치에서 제주 사회의 성찰을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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