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름 덩굴과 열매. (사진=송기남)
으름 덩굴과 열매. (사진=송기남)

졸겡이는 으름덩굴의 열매를 가리키는 제주말이다. 그 줄기를 '졸겡잇줄'이라 한다. 으름덩굴과 목본성 졸겡이줄은 덩굴성 식물로, 따뜻한 제주에서부터 강원도 이남까지 자생하는 식물이다.

제주도서도 해발 200고지를 넘어서는 산간지대에서는 낙엽지는 식물이지만 따뜻한 해안선 지역에서는 사시사철 푸른잎을 자랑하는 상록성 식물이다.

한국 표준어로는 '으름'이며, 경상도 지역에서는 '어름'이라 한다. 제주도에서는 지역에따라 '졸겡이', '존곙이', '유름' 등으로 불린다.

제주의 동쪽부터 서쪽까지 제주도 한라산 남반부에서는 '졸겡이', '존곙이'라 하고 조선시대 제주 목관아를 중심으로 하는 제주시 중심권에서는 '유름'이라 했다.

이것은 한국 본토와 왕래가 잦은 지금의 제주항을 중심으로 한국 본토언어에 가깝게 변형된 언어가 아닌가 싶다. 으름과 유름의 차이를 제껴두더라도 졸겡이는 제주 고유 언어다.

익어서 벌어진 으름 열매. (사진=송기남)
익어서 벌어진 으름 열매. (사진=송기남)

졸겡이는 가을 한철 산행중에 배고픔을 달래주던 고마운 열매다. 옛날 쉐테우리나 말테우리들은 9월 중순부터 10월 상순까지 가축들을 살피러 다니다가 덤불 숲속으로 뛰어들어 졸겡이를 따먹었다.

잘 익은 졸겡이는 세로로 껍질이 갈라져 하얀 과육과 새까만 씨앗을 드러낸다. 달고 찰진 열매 속 과육은 먹어도 먹어도 배가 터지도록 먹고 싶어진다.

열매 하나에 들어있는 수백개의 검은 씨앗들을 일일이 벹어낼수도 없고 씹어서 먹으면 쓴맛이 난다. 그래서 그냥 오물오물 하다가 삼키는 것이 편하다.

탐스럽게 익어 갈라진 열매는 그 맛을 아는 새들과 사람들이 서로 경쟁하듯 보이는대로 달려들어 먹어치운다.

산새들이 열매가 부족하면 해뜨기 전에 나서야만 따먹을 수 있었던 열매다. 아침에 일어나 배가 고파 우는 새들은 하얗게 벌어진 열매를 골라 먹어치운다.

늦게 산에 도착해 새들에게 열매를 빼앗기면 그냥 산속을 돌아다니다가 오후쯤에 2차 벌어진 열매를 찾아내어 따먹는다.

오전에 배불리 먹은 새들은 신나게 노래부르다가 해가 지기 직전에 마지막 열매를 먹고 잠잘 곳을 찾아간다. 그 중간사이에 익은 열매를 찾아보면 쉽게 찾을수가 있다.

1948년 제주에서 발발한 4·3 와중에 산으로 숨어들었던 제주도민들은 공급받지 못한 끼니를 가을열매에 의존해야만 했다.

그들에게 졸겡이는 밥반찬도 밥상도 필요없이 아무데서나 이동하면서 먹을수 있었던 생명줄이었다.

으름열매는 음력 8월에 찰지게 익는다 하여 '팔월찰'이라고 불린다. 옛 사람들은 졸겡이줄을 거둬다가 골채를 만드는데 쓰기도 했다.

골채는 농가에서 쓰던 삼태기의 제주말이다. 삼태기는 수확한 농작물을 담아 나르거나 흙이나 자갈등 나르는데. 쓰던 농가에서 필수 도구였다.

이것을 만드는데 테두리는 상동나무로 하고 촘촘히 엮어내는 바닥면은 칡이나 졸겡이줄로 엮었었다.

다만, 한국 본토에 농가들은 대나무로 만들기도 했었다. 이렇게 자연에서 재료를 구해서 만들던 삼태기가 우리 농가에서 사라지게 된 것은 1970년대 이후 철제제품이 공장에서 생산되면서 부터였다.

으름꽃. (사진=송기남)
으름꽃. (사진=송기남)

줄기는 생약명으로는 통할 통(通), 풀 초(草)를 써서 '통초'로 불렸다. 뿌리줄기는 나무 목(木), 통할 통(通)을 써서 '목통'이라 했다. 특히 목통은 요로결석을 녹여주므로 막혔던 오줌을 시원하게 배출시켜준다. 그래서 줄기 속이 비어있기도 하지만 막힌 것을 뚫어준다는 의미도 있다.

통초는 성질이 서늘하고 맛은 쓴 편이다. 뿌리는 성질이 평하고 맛이 쓰다. 열매는 성질이 서늘하고 맛은 달며 피를 돌게하고 월경통과 이질을 다스린다.

목통은 피를 돌게하고 염증을 다스리며 관절통을 다스리고 모유 분비를 돕는다. 열매는 덜익은 열매를 썰어 말려 쓰거나, 익은 열매의 겁질을 말려서 약재로 쓴다.

졸겡이줄은 양지식물이면서도 땅바닥에서만 혼자 살아갈수 없는 식물이다. 그래서 다른 나무나 돌담을 타고 올라야만 살아갈수가 있다.

이것은 모든 덩굴 줄기식물이 가지고 있는 생존 조건이다. 그래서 빽빽한 숲보다는 초지와 숲사이에 가시덤불과 관목들이 군생하는 언저리에서 햇볕을 조이며 올라타는 식물이다.

꽃은 4월에 암자색으로 암꽃과 숫꽃이 같은 줄기에서 따로 핀다. 열매가 될 암꽃은 조금 큰 통꽃 속에 길쭉한 작은 꽃들이 여섯개씩 핀다.

숫꽃은 작은 꽃들이 다닥다닥 피어 꿀벌이 날아들어 꽃가루를 수정시킨다. 이때 수정이 잘된 열매들은 꽃받침 하나에 세 개 이상의 열매가 달리지만 열매가 하나씩 낱개로 달린것들은 꽃가루 수정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들이다.

자연계에서 한철 흐드러지게 피는 꽃들을 수정시킬 꿀벌들이나 곤충들의 숫자가 턱없이 모자랄 때 꽃들은 결실없이 지고만다.

송기남.

송기남. 서귀포시 중문동에서 출생
제민일보 서귀포 지국장 역임
서귀포시 농민회 초대 부회장역임
전농 조천읍 농민회 회장 역임
제주 새별문학회 회원
제주 자연과 역사 생태해설사로 활동중
제주 자연 식물이야기 현재 집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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