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봄과 여름이 청춘의 계절이라면 가을은 중년의 계절일 것이다. 더불어 세월에 무르익은 재즈음악이 가장 어울리는 계절이기도 하다. 선선해지는 저녁이면 헤드폰을 쓰고 집근처 바닷가로 산책을 간다. 산책을 위한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꼼꼼히 챙김은 물론이다.


나이가 들수록 복잡하고 난해한 연주보다는 단순하고 섬세한 연주를 좋아하게 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미지를 구현하고 공간을 넓히는 연주말이다. 기타리스트로 치면 조패스 보다는 짐홀이고 마이크 스턴 보다는 빌 프리셀이다.

드럼 연주는 스틱보다는 브러쉬 연주가 좋다. 스네어를 강하게 내리치지 않고 살살 쓸어내며 다양한 리듬을 만들어 내는 모습은 마법사처럼 신비롭다. 

특히나 피아노 트리오에서 브러쉬의 섬세한 리듬과 콘트라 베이스의  워킹은 피아노의 맑은 음색과 환상적인 궁합을 이룬다.



그런 의미에서  일렉 베이스보다는 역시 콘트라 베이스다. 한때 기타를 버리고 콘트라베이스로 전향할까 고민했을 만큼 두꺼운 플랫 와운드 스트링과 거대한 나무 통에서 울리는 저음의 풍부한 소리가 좋았다. 특히나 연주할때의 포지셔닝이 전에는 몰랐던 음악의 또 다른 세계를 느끼게 했다. 그것이 바로 베이스가 가진 고유의 특성임을 그때 알았다.

콘트라 베이스 Contra Bass는 더블 베이스 Double Bass 라고도 불리우며 서서 연주한다고 해서 업라이트 베이스 Upright Bass라고도 불린다.(주로 어쿠스틱 재즈와 클래식 교향악단에서 쓰인다) 재즈에서 콘트라 베이스(이하 콘트라) 연주자 하면 일단 오스카 페티포드가 떠오른다. 지미 블렌튼이 콘트라 연주의 개척자라면 오스카 페티포드는 지미의 연주법을 더욱 발전시키며 정확한 피치카토와 리듬을 구사했다.
워킹 베이스라 불리우는 4비트의 탄탄한 리듬은 드럼의 타임 키핑과 더불어 솔로연주자들에게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게 공간을 내어 준다. 레이 블라운,론카터,크리스찬 맥브라이드등이 이런 스타일이 부각되는 플레이어다.

한편 빌에반스 트리오의 스캇 라파로는 지미 블랜튼 이후 또 다른 혁명적인 연주를 시도 한다.
그 전까지의 드럼과 콘트라가 안정적인 타임 키핑과 워킹으로 솔로 연주자들을 받혀줬다면 스캇 라파로는 기존의 연주법을 벗어나 좀 더 자유롭다.
멜로디 도입부부터 빌의 피아노 연주에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솔로 연주자와 대등한 위치에서 도발적인 리듬과 대선율로 입체적인 사운드를 들려주며 폴 모션의 드러밍 또한 거친 리듬으로 뜨겁게 응대한다.

이러한  여러 스타일의 연주자중에서 찰리 헤이든 Charlie Haden은 다소 독특한 위치에 있다. 그는 프리재즈 연주자 오넷 콜맨쿼텟 Ornette Coleman Quartet의 [ The Shape of Jazz to Come 1959 ]의 베이스 연주자로 널리 알려졌다. 이 앨범에서 그는 색소포니스트 오넷과 트럼펫터 돈 체리 Don Cherry의 도전적이고 전위적인 연주 뒤에서 흔들리지않고 묵묵히 멋진 연주를 들려준다.

1937년 아이오와에서 태어난 그는 컨트리와 민속음악을 연주하는 가족들과 함께 어렸을 때부터 노래를 시작 했다. 그러다 14살 무렵 소아마비로 인해 목근육과 성대에 이상이 생겨 피치를 조절할 수 없게 되자 형이 연주하던 베이스를 택하게 된다. 그 후 작곡과 연주에 급격한 성장을 보였고 1950년대 중반에는 활동무대를  LA로  옮긴다. 그곳에서 Art Pepper등 여러 재즈뮤지션들과 협연하며 프로 페셔널 뮤지션의 길을 가게 된다.


1960년대 말엔, 칼라 블레이 Carla Bley등과 Liberation Music Ocestra를 결성해 정치적인 사상을 프리 재즈에 담아내며 여러 실험적인 시도들을 하게 된다. 이들의 1집은 스페인 내전에 대한 이야기다. 수록곡 중 <Song of United Front통일 전선의 노래 >는 한스 아이슬러가 곡을 쓰고 베르톨드 브레이트가 가사를 붙인 독일의 민중음악이다. 특유의 비감한 멜로디와 행진곡 풍의 리듬은 묘한 긴장을 불러 일으킨다. 1971년 포르투갈 순회공연중에는 체 게바라에게 헌정하는 곡인 <Song for Che>를 연주하여 비밀경찰들에게 체포되고 FBI의 조사를 받기도 했다.

정치적으로 좌파인 그의 연주는 따스하고 서정적이며 낭만적이다.
특히 에그몬트 지스몬티와 얀 가바렉과 함께한 [Magico 1979]는 재즈를 넘어선 독자적인 음악의 경지를 들려주었고 그의 음악성이 극대화된 음반이다.

그는 유독 듀오 앨범을 많이 남겼다.

Hank Jones와 함께한 [Steal Away 1995]에는 가스펠과 민속음악들이 담겨있다. 두 거장의 연주는 영적인 기운이 느껴질 만큼 경건하고 평안하다.

키스 자렛과의 듀오 [Last Dance 2014] 역시  잊을 수 없을 만큼 투명한 선율들의 향연이다.

사후에 발표된 브레드 멜다우와의 듀오 라이브 앨범 [Long Ago And Far Away 2018]의 선연한 사운드는 어떤가!

하지만, 찰리 헤이든의 연주와 작곡의 특징이 가장 두드러지는 앨범은 역시나 팻 메시니와 함께한 <Beyound The Missourry Sky 1996>이다.
그의 아내 루쓰를 위해 작곡한 첫 곡<Waltz For Ruth>는 서정적이고 우아한 멜로디를 자랑한다. 둘만의 절묘한 타임으로 언뜻 2박곡처럼 들리지만 곳곳에 왈츠 특유의 멜로디 쉐입들이 나온다.

팻 메시니가 연주하는 나일론 기타는 특히나 그 감정선이 도드라지는데 이어서 나오는 <Our Spanish Love Song>에서 깊은 감성의 선율들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The Moon Song>은 공명하는 할로우 바디기타와 어쿠스틱기타의 컴핑, 두터운 톤으로 연주하는 콘트라 솔로가 밤하늘의 달처럼 은은하게 빛난다.

이 앨범엔 영화 [시네마 천국 Cinema Paradiso]의 O.S.T중 <Main Theme>와 <Love Theme>도 실려 있다. 활을 이용한 콘트라의 보잉사운드에 맞춰 기타는 스트레이트와 스윙리듬을 교차하며 긴장과 이완을 적절히 조절한다.

앨범의 마지막은 찰리의 아들 조쉬 헤이든의 작곡한 <Spiritual>. 마치 어린 아들에게 들려주듯 사려깊게 연주하는 콘트라의 인토네이션이 돋보인다. 무척이나 단순한 코드진행임에도 둘은 마르지 않는 화수분처럼 계속해서 빼어난 멜로디들을 쏟아낸다.

양진우
양진우

음악행위를 통해 삶의 이면을 탐구해나가는 모험가,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인 양진우 씨는 이렇게 자기 자신을 소개한다, The Moon Lab 음악원 대표이며 인디레이블 Label Noom의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매달 마지막 주 음악칼럼으로 독자들을 만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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