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뮤지션들에겐 너무나 익숙한 리얼북(RealBook)이라는 책이 있다. 여기엔 여러 400여개의 스탠다드곡들이 수록돼 있다 'Jazz Standard'란 뮤지션들이 자주 연주하는 곡들을 뜻한다. 스탠다드 곡은주로 3-40년대의 브로드 웨이 뮤지컬과 영화음악이었고 후에 듀크 에링턴이나 몽크 등 재즈 작곡가의 곡들이 추가된다.

재즈 곡들은 일반 팝에 비해 다소 복잡한 코드진행과 키를 넘나드는 전조, 독특한 화성 등으로 인해 (즉흥)연주를 하기에 적잖은 노력이 필요하다.

재즈는 스탠다드 곡을 익히며 시작되고 잼세션을 할 때에도 대부분은 스탠다드 중 한 곡을 택해  연주한다. 대부분의 재즈 연주자들은 50~200여 곡을 혹독하게 연습하며 곡마다의 리듬과 화성, 연주법 등을 익힌다.

1995년 무렵이 되어서야 국내에도 재즈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교육 기관이 만들어졌다. 그 즈음 미국과 네덜란드 등으로 떠나 음악을 공부하던 유학파들이 대거 귀국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국내의 재즈 시장은 활성화 되었고 본토의 재즈와 견줄 만큼 연주력은 급상승하기 시작한다.

클럽에선 주로 스탠다드 곡들을 연주했다.

그러다 2000년대가 되면서 뮤지션들이 오리지널 곡들을 선보이기 시작했고 기존 국내 가요를 편곡하여 음반에 수록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전에도 코리언 스피리추얼, 코리안 재즈 사운드를 내세웠던 앨범은 있었다. 1979년에 이판근과 코리안 재즈쿼텟 78’의 [재즈로 들어본 우리 가요, 민요, 팝송]이 발표되었다. 이 음반에는 재즈 이론가 이판근의 편곡으로 < 아리랑>, <가시리>, <한 오백년>등의 우리 민요와 세 곡의 재즈 스탠다드가 수록돼 있다.

보컬리리스트 박성연은 1985년 발매된 [Jazz At The Janus] 앨범에서 <물안개>, <세월이 흐른 후에>등을 선보였고 류복성과 신호등의 라틴 재즈 스타일인 <혼자 걸어가는 명동길>이라는 곡이 히트하기도 했지만 정통 재즈의 느낌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한국적인 느낌을 담아 국내 대중음악을 재즈화한 몇 장의 앨범을 살펴보기로 하자. 

[ 이정식 - 화두 The Korean Jazz Standards Vol.1(1999)]

 

시대를 풍미했던 색소폰 연주자 이정식이 국내 민요와 대중음악을 재즈로 재해석한 앨범이다. 첫 곡 <몽금포 타령>과 <진주 난봉가>에서 드러나는 드럼의 국악적인 리듬과 일명 '태평소 주법(?)'이라 부르는 소프라노 색소폰의 어프로치가 신선하다.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에서 들리는 솔로 기타 인트로와 선율 역시 따스하고 소담하다. 소리꾼 장사익이 참여한 <희망가>와 차은주가 부른 <열 일곱 살이에요>등 보컬 트랙도 수록해 당시 척박했던 재즈씬의 대중화를 시도했다.

[ 잭리 with Toninho Horta - Episodes(K-Pop Session in Rio de Janeiro)2002 ]

 

한국의 기타리스트 잭리가 브라질의 기타 거장 Toninho Horta와  만나 도회적인 색채의 보사노바 음악을 들려준다. 수록된 대부분의 곡들은 <비처럼 음악처럼>, <그대안의 블루> 등 명곡으로 꼽히는 90년대 국내 대중가요들이다. 첫 곡 <Sad Fate 슬픈 인연>부터  이국적인 사운드위로 흐르는 익숙한 멜로디가 독특한 매력을 느끼게 한다. 특히 <See Off 배웅>은 몽롱한 톤의 할로바디 기타와 나일론 기타의 따스한 멜로디와 토닌뇨의 중성적인 허밍이 다채로운 색감을 전해 준다.

[ 손성제 - 누보송 Nouveau Song 2003 ]

 

한국 재즈의 세계화를 모토로 제작한 음반. 설문조사를 통해 곡을 고르는등의 심혈을 기울인 기획답게 당시 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Nouveau Song새로운 노래'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세련된 편곡과 응집된 연주가 담겨 있다.

당시 막 귀국한 손성제와 임미정(피아노), 오종대(드럼)등의 유학파 연주자들과 정중화(베이스), 김민석(기타), 정정배(타악기)등의 신진 연주자들은 절제되면서도 유려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특히 모든 가사를 영어로 개사해 재지한 느낌을 담아 냈다. 남예지의 스모키한 목소리가 인상적인 <춘천가는 기차>, 보사노바 리듬에 청아한 보컬이 어우러지는 신예원의 <이별의 그늘> 등 곡마다 저마다 개성있는 색깔을 부여한다.

[ 말로 - 동백 아가씨 k-Standard 2010 ]

 

말로는 2003년 발표한 3집 <벚꽃지다>에서부터 오리지널 곡을 모국어로 노래하며 한국적인 색채를 담아냈다. 본격적으로 K-Standard를 표방하며 발표한 이 앨범은 5-60년대의 트로트 음악을 재즈로 편곡했다. 피아노 쿼텟에 박주원의 기타와 전제덕의  하모니카가 추가된 편성인데  정갈하면서도 풍성한 연주를 들려 준다. <빨간 구두 아가씨>의 명쾌한 리듬도 좋고 피아노의 맑은 톤위로 흐르는 <동백 아가씨>의 비감어린 목소리도 좋다. 차차차 리듬으로 편곡된 <서울야곡>의 애수띈 기타 솔로와 아프로 큐반 스타일로 편곡된 <목포의 눈물>도 인상적이다.

[ 손성제 - A Farewell to Unknown Friend 2014 ]

 

이 앨범은 독특하게도 피아노(김은영) - 드럼(송준영) - 색소폰(손성제)로 이루어진 트리오 편성이다.

베이스 사운드를 의도적으로 뺌으로서 여백의 공간을 확보했고 그로 인해 묘한 긴장감이 내내 깔려있다. <A Farewell to Unknown Firend>, <Oslo>, <Goodbye Charlie> 등의 오리지널 곡들은 섬세한 멜로디와 서정성을 띄면서도  날카롭고 이지적이다.  번안가요인 <It's A Lonesome Old Town밤안개 >는  마칭 리듬의 드럼과 함께 하는 리하모니된 피아노 컴핑과 색소폰 솔로가 아련하다. <Dream 꿈속의 사랑>은 투명한 피아노 인트로와 함께 미니멀한 드럼 연주와 색소폰의 청명한 사운드가 공간을 부유하며 서서히 퍼져나간다.

옛 가요의 흔적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이고 창조적인 연주가 담겨 있는 빼어난 음반이다.

■ 그외 추천 음반들

[ 말로 - MALO SINGS BAEHO K-Standard Vol.2 2012 ]

[ 말로 - 송창식 송북 2020 ]

[ European Jazz Trio - West Village 서촌 2017 ]

[ Time After Time 6 - PPONG JJAK 뽕짝 2015 ]

양진우
양진우

음악행위를 통해 삶의 이면을 탐구해나가는 모험가,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인 양진우 씨는 이렇게 자기 자신을 소개한다. The Moon Lab 음악원 대표이며 인디레이블 Label Noom의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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