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걸음만큼 세상은 움직인다’ 슬로건을 내걸고 지난해 11월부터 제주기후평화행진이 시작됐다. 행진에 참가한 시민들은 매달 셋째 주 기후위기 현장을 선정, 답사를 통해 기후재난의 현주소를 알리고 지속가능한 인류와 생태계의 공존을 위한 적극적인 실천을 모색한다. 제주투데이는 행진에 동행해 현장과 시민들의 목소리를 기록한다. <편집자주>

지난 15일 '지하수와 숨골, 용암동굴'을 주제로 10번째 제주기후평화행진이 진행된 가운데, 참가자들이 서귀포시 온평리 혼인지 내 신방굴을 관찰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지난 15일 '지하수와 숨골, 용암동굴'을 주제로 10번째 제주기후평화행진이 진행된 가운데, 참가자들이 서귀포시 온평리 혼인지 내 신방굴을 관찰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인위적인 개발이 이뤄진다면 자연적인 물 순환 시스템이 깨질 수밖에 없죠. 그럼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예측할 수 없어요."

제주는 지질학적 특성으로 지표수가 거의 없다. 대부분의 물자원을 지하수에 의존한다. 그러나 깊은 땅 속에 있는 물이 우리에게까지 오는 경로는 쉽게 잊힌다.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물의 고갈이나 오염 역시 예측하기 어렵다.

기후위기로 가뭄이 일상이 된 지금, 국내를 포함해 세계 곳곳에서 지하수가 말라 땅이 내려 앉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려오는 상황. 지난 15일 10번째로 진행된 제주기후평화행진에서는 지하수 함양의 통로인 숨골과 용암동굴 등 도내 지질환경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지난 15일 '지하수와 숨골, 용암동굴'을 주제로 10번째 제주기후평화행진이 진행된 가운데, 강순석 제주지질연구소장이 해설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지난 15일 '지하수와 숨골, 용암동굴'을 주제로 10번째 제주기후평화행진이 진행된 가운데, 강순석 제주지질연구소장이 해설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지하수 통로, 숨골 ... 용암동굴의 천장 

이날 행진단은 서귀포시 온평리 혼인지 내 신방굴에 들러 동굴 내부를 살펴봤다. 겉만 보면 뻥 뚫린 커다란 구멍에 불과했다. 하지만 계단을 통해 내부로 들어가니 통로는 끝이 없없다.

제2공항 부지 온평리. 화산지질학적으로 넓고 평평한(파호이호이) 용암류가 있는 지대다. 제주어로 하면 빌레지대다. 한편으로는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이기도 하다. 비를 머금는 스펀지 역할을 해낼 흙도, 하천도 없다. 그런데도 홍수는 나지 않는다. 그 많은 비는 다 어디로 갈까? 숨골이다.

이날 해설을 맡은 강순석 제주지질연구소 소장은 "지하에 공간이 없다면, 즉 동굴이 없다면 불가능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숨골이 제주어로 '숨굴'이라고 불리는 것도, '세 공주가 이곳에서 첫날밤을 보냈다'는 신방굴의 신화도 모두 동굴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

강 소장은 "숨골도 지하수 통로 관점에 치중돼 있지만 지질학적으로는 용암동굴의 '천장창'으로 봐야 한다"며 "지금 이곳 신방굴 내 형성된 중소형 동굴도 확인된 것만 10여개"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외에도 용암의 굳은 표면이 깨져 생긴 클링커층 역시 지하수가 지나는 통로"라며 "그렇게 흘러간 물은 해발 35m 지하 공간에 고여있지 않고, 패킹돼 암반고체 형태로 돼있다. 우리가 먹는 삼다수를 뽑아내는 과정도 이론만 있을 뿐 연구로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15일 '지하수와 숨골, 용암동굴'을 주제로 10번째 제주기후평화행진이 진행된 가운데, 참가자들이 서귀포시 온평리 혼인지 내 신방굴을 관찰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지난 15일 '지하수와 숨골, 용암동굴'을 주제로 10번째 제주기후평화행진이 진행된 가운데, 참가자들이 서귀포시 온평리 혼인지 내 신방굴을 관찰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지난 2017년 일부 양돈업자가 수백톤의 축산폐수를 무단방류해 적발된 이른바 '숨골 사태'는 지하수 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줬다. 강 소장은 양돈산업 뿐만 아니라, 수산 양식산업도 이에 일조하고 있다고 짚었다. 이미 주변 양식장이 과도하게 지하수를 뽑아내 상당한 오염이 진행됐다는 것.

그는 "양식장에서는 수온을 이유로 바닷물과 민물인 지하수를 섞어 사용한다. 농업용으로 지하수가 사용될 때는 규모가 작은 관정을 통해 소량만 쓰인다"며 "그런데 양식장에서는 약 5만t의 관정을 여러개 파서 대량으로 뽑아낸다"고 설명했다.

이어 "염수는 밀도가 높아 아래에 위치하고, 윗쪽에는 담수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 중간 부분을 엄청나게 추출하는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담수가 후퇴해 바닷물과 섞여 짠물이 된다"고 오염 과정을 설명했다. 

그럼에도 자연적인 물 순환체계는 이미 형성돼 있다. 이곳을 통과한 물은 대수층을 거쳐 해안에서 용천수로 솟아난다. 여기에 공항 등 인위적인 대규모 개발이 이뤄진다면 이 시스템에는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강 소장은 말했다.

그는 "국토교통부가 제2공항 기본계획을 '고시'한다면 돌이킬 수 없어진다. 법적으로 확실해지는 조치이기 때문"이라며 "우리는 체계가 망졌을 때 생태계에 일어나는 문제를 예측할 수 없다"이라고 우려했다.

지난 15일 '지하수와 숨골, 용암동굴'을 주제로 10번째 제주기후평화행진이 진행된 가운데, 수산리 소재 용암동굴인 수산동굴에 방문했다. (사진=박지희 기자)
지난 15일 '지하수와 숨골, 용암동굴'을 주제로 10번째 제주기후평화행진이 진행된 가운데, 수산리 소재 용암동굴인 수산동굴에 방문했다. (사진=박지희 기자)

미지의 터널, 용암동굴

옆 동네 수산리에 위치한 수산동굴에 도착했다. 총 길이 5.5km에 달하는 대형 용암동굴로, 도내 3번째로 긴 동굴이다. 학술적·문화재적 가치가 높아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제467호로 등록되기도 했다.

동굴 입구만 보면 사람이 한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규모였다. 그러나 내부 사정은 다르다. 해발 130m 깊이로, 2~3겹의 층으로 이뤄져 있다. 하지만 우리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동굴의 모습은 오직 입구까지다.

이는 용암동굴에 대한 보존가치에 대해 활발히 논의되지 못하는 이유와 연결된다. 연구나 정부 관계자가 아닌 일반 시민들은 접근조차 쉽지 않기 때문. 은폐 의혹을 제기해도 '의혹'으로만 그치기 쉬운 이유다.

강 소장은 "이 곳(수산동굴)도 원래 4.5km였지만 용역을 통해 새로 조사하니 1km가량 늘어났다"며 "하지만 이같은 데이터는 일반에 잘 공개되지 않는다. 조작 및 은폐 가능성이 충분히 제기될 수 있다"이라고 말했다.

특히 "동굴은 도로 등 공사 중에 현장기사들이 신고하는 식으로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미로형 동굴이 많아 직접 탐사는 위험해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엑스레이와 비슷한 방식인 탄성파 물리 탐사도 있지만 오류가 심해 정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탄성파 탐사로 발견된 경우는 국내에서 단 한 건도 없다. 환경영향평가 등에서 이러한 방식으로 지질조사를 한 뒤 '동굴이 없다'고 밝히는 것은 거짓말과 다름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제주도가 유네스코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것과 관련, 용암동굴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박지희 기자)
(사진=박지희 기자)

이날을 마지막으로 10차례 이어온 기후행진은 마무리됐다. 약 1년 동안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월정리 동부하수처리장 ▲평화대공원 설치가 논의되고 있는 송악산 ▲도로 확포장 공사가 진행 중인 비자림로 ▲들불축제 개최지인 새별오름 ▲성산읍 제2공항 건설 후보지 ▲구좌읍 국가위성통합운영센터 ▲서귀포시 우회도로 ▲ 화순항 등을 걸었다.

행진단은 수산동굴 인근 500m에 위치한 수산한못에 도착해 둘러앉고는 그간 활동들에 대한 소감을 나눴다. 

이번 행진에 참가한 이해솔 YMCA 활동가는 "제주에서 발생하고 있는 현상들이 앞으로 인류에게 미칠 영향의 축소판으로 보인다"며 "요즘 기후위기 관련 이슈와 현안이 많아 놓치고 있는 부분도 있어 성과나 평가들이 공유되면 좋겠다"고 소감을 나눴다.

김혜령 제주녹색당 당원은 "인도에는 빈민들을 위한 투어가 있다. 겉만 보면 상업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수익은 지역 아이들의 교육비로 사용되고, 참여자들의 후원으로 연결된다"며 "제주에 오로지 관광만 하려는 사람도 있지만 체험을 바라는 사람도 있다. 신뢰감 있는 전문가까지 동행하는 프로그램인 만큼 잘 발전시키면 지속가능하지 않을까"라며 의견을 냈다. 

주최 측인 최성희씨는 "동료 활동가 및 시민들과 현장을 직접 찾아가 의견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으로 단순하게 출발했다. 이는 누구라도 할 수 있기에 도내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성행됐으면 좋겠다"며 "각 현장마다 인상이 모두 달랐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상실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황용운씨도 "매년 제주시청 앞을 걷는 기후행진도 의미있지만 기후재난의 현장을 직접 찾아가보자는 취지로 팀을 꾸렸다. 개인 혼자서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라며 "행진을 지속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제주기후평화행진은 도민보고회를 개최, 활동에 대한 성과 및 향후 계획을 공유할 예정이다. 보고회는 다음달 23일 오후 3시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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