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청 주차장 바닥에 앉아 김밥으로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 월정리 해녀들(사진=김재훈 기자) 제주도청 아스팔트 위에서 노숙 농성 중인 월정리 해녀들.(사진=김재훈 기자)
제주도청 주차장 바닥에 앉아 김밥으로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 월정리 해녀들(사진=김재훈 기자)

마을회가 뒤로 빠져도 해녀들은 맞서 싸웠다. 무더기 소송까지 걸려가면서.

제주동부하수처리장 증설 공사로 인한 갈등으로 오랫동안 몸살을 앓아온 월정리 얘기다.

제주도와 월정리마을회가 공사 재개를 합의하면서 공사는 결국 재개됐다. 5년만이다. 갈등이 일단락된 양상이지만 상처와 설움은 여전하다. 해녀들의 설움 위에 '잔칫상'이 마련된 꼴이다. 월정리 해녀들이 제기한  문제 의식과 갈등을 서둘러 '설거지' 하는 과정은 제주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월정리 해녀들의 하수처리장 증설공사 반대 싸움은 단순히 님비현상으로 봐서는 곤란하다. 월정리 해녀들의 싸움은 제주 바다 생태계 훼손의 심각성에 대한 고발의 성격을 지닌다. 해녀들은 제주 바다 생태계 훼손의 문제를 가장 먼저 목격하는 이들이다. 그들은 월정리 앞바다에 쏟아져 나오는 방류수가 이미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다고, 하수처리량을 더 늘려서는 안 된다고 소리쳤다. 5년 동안.

하지만 공사는 재개됐다. 제주도는 월정리마을회와 상생방안이라는 것을 마련해 나가고 있다. 월정리를 벽화마을로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한다. 해녀들이 벽화마을을 요구해 왔던가?  물론 아니다. 해녀들은 전복과 소라와 우뭇가사리가 자랄 수 있는 깨끗한 바다 환경을 바랐다. 그러나 그 대신 월정리 담벼락에 전복이나 물질하는 해녀의 모습이 벽화로 '박제'될 지 모른다.

정말이지, 해녀들이 담벼락 벽화를 위해서 5년 동안 싸워온 것은 아니다. 마을회관 신축을 위해서 추운 날 제주도청 주차장에서 노숙 농성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제주도가 제시하는 월정리와의 ‘상생’은 이렇게 진행되고 있다. 벽화마을을 조성하고, 마을회관을 신축하는 방식으로. 급하게.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과연 온당한 것일까?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 지난달 20일 열린 ‘월정리 하수처리장 증설을 둘렀나 갈등과 과제’를 주제로 한 포럼에서 나온 말들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과 제주투데이가 함께 진행한 포럼에서 월정리 해녀 김은아씨가 첫 발제를 맡았다. 해녀 당사자는 하수처리장 증설 공사 반대 활동을 어떻게 정의할까. 김은아씨는 “미래를 위한 싸움”이었다고 말한다.

월정리 해녀 김은아씨(사진=김재훈 기자)
월정리 해녀 김은아씨(사진=김재훈 기자)

김씨는 해녀들의, 월정리의, 제주의 미래를 위한 싸움이 마치 금전적 보상을 목적으로 한 싸움인 듯이 프레이밍 됐다고 토로했다. 바다에 한 번 들어가 보지 않은 사람들이 뒤에서 수군거렸다. “보상금 받으려고 그러는 것 아냐?” 바닷속 상황을 날마다 바라보면서 더 이상은 안 된다고 말하는 해녀들 뒤에서. "하수량이 늘어나는데, 그럼 어떻게 할 건데?" 이런 질문들도 날아들었다. 그 질문에 대한 김씨의 답은 명료하다. “하수량 증가의 원인을 찾고 그것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해 달라는 것.” 해녀들이 제주도에 바란 것은 그것이 전부다. 금전적 보상이 아니라. 벽화가 아니라.

해녀들에게 고소·고발이라는 포탄도 날아들었다. 5년은 긴 시간이다. 그 긴 시간, 공사 반대 활동을 이어가는 동안 주민 간 갈등은 물론, 해녀들 간 분쟁도 야기됐다. 소송이 무섭지 않을 리 없다. 누군가는 각오를 단단히 했을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지치고 두려웠을 터. 하수처리장 공사 재개는 이렇게 공동체를 찢으면서 이뤄졌다.

김은아씨는 이 같은 공사 재개 과정에 대해 “공권력을 앞세워서 주민, 시민을 강제 굴북시켜 갈등이 종결되었다”면서 “(오영훈 지사가) 갈등이 봉합이 되고 화합을 이뤘다고 잔치처럼 얘기하는데, 과연 그럴까 정말 마을 안에서의 갈등은 해결되었나”라고 자문했다.

김씨는 “개개인의 갈등은 여전히 남아있고 주민과 주민 간의 갈등도 여전히 남아있고, 공동체 안에서 남성과 여성 간 갈등도 여전히 존재하고 '공동체와 행정', '공동체와 공권력' 이런 것들의 갈등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해결된 게 전혀 없다.”고 말했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이라는 것이다.

엄문희씨(사진=김재훈 기자)
엄문희씨(사진=김재훈 기자)

월정리의 갈등은 그간 가려져 있던 하수 처리 문제와 마을의 의사결정 구조를 비롯한  여러 가지 쟁점을 수면 위로 드러냈다. 포럼의 두 번째 발제를 맡은 엄문희씨는 “하수 원인, 하수 관리에 관한 정책의 부실, 광역화 정책의 구조적 문제, 바다(생태계)에 전가된 피해” 등에 대해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월정리에서 ‘상생방안’이라는 이름의 사업들이 추진된다고 해서 멈춰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제주 전역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의 해결은 곧 또 다른 지역의 해녀들이 바다를 잃어버리도록 만든다. 더욱 확대해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엄씨는 “이런 일들은 이번에는 월정이 있었지만 이전에는 다른 곳에서 있었고, 강정이었을 수도 있다. 너무 많은 곳에서. 사실은 이것은 징후이고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해녀들의 하수처리장 증설 공사 반대 운동을) ‘월정리에 있었던 사건’으로만 만들면 안 된다. 그 공권력은 오히려 이것을 (단순한) 사건으로 만들고 해결하고 넘어가려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저는 이거를 (단순한) 사건으로 보면 안 된다.”고 말했다.

엄씨는 월정리 같은 갈등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사전예방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전예방의 원칙은 시민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사안의 안전성 등에 대해서 행정이 증명하도록 하는 원칙이다. 하지만 국가와 지자체가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원칙이다.

“행위 당사자, 개발 당사자 혹은 사업 당사자의 노력이나 의향이 분명히 있어야 되는데, 그 노력이 좀 부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잘 시행되기 위해서는 민주적인 절차, 여러 가지 절차적 정당성이라는 게 제대로 확보가 되어야 한다. 현재 보면 설명회든 공청회든 법적으로 다 정해져 있는데, 우리는 ‘그런 행사를 했다’ 혹은 ‘열람 했다’는 것으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한 것처럼 되어 있다.”(엄문희)

행정이 사업을 추진하며 주민 설명회나 공청회를 열 때 법이 정한 횟수를 채우는 데 급급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주민들이 참여하지 않는 상태에서 공무원으로 자리를 채운다거나 하는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취재를 하면서 그런 자리에 숱하게 참여하고 바라봐온 바, 동의한다. 주민들의 반발로 파행된 설명회나 공청회까지도 행정이 관련 사업에 대한 공론화를 위해 노력한 흔적으로 남게 된다. 일단 법이 정한 횟수를 채우기만 하면 문제가 없다는 편의적 발상. 사전예방의 원칙으로 이런 부조리를 막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19일 오전 10시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 어촌계 해녀들은 제주도청에서 집회를 열고 21일 예고한 제주동부하수처리장 증설 공사 중단을 촉구했다. (사진=박소희 기자)
하수처리장 증설공사 반대 집회를 열고 있는 월정리 해녀들.(사진=박소희 기자)

월정리 하수처리장 증설공사 반대 싸움에서는 마을회의 의사결정 구조의 문제도 부각됐다. 특히 남성과 여성 간 위계 문제에 대해서. 김은아씨의 다음 발언은 주목할만 하다.

“해녀회는 힘이 없는 그냥 단순 자생단체에 불과했다. 어떤 결정권도 없고 어떤 권리 주장을 할 수 있는 그런 마을에서의 위치가 전혀 안 된 것이었다. 근데 해녀회 위에는 어촌 계장이 있는데 어촌계장이 남성이고, 마을회의 개발위원회라든가 임원들은 전체적으로 남성이다. 마을 미래발전위원회 협의체 구성원에도 해녀 회장, 부녀회장 말고는 다 남성이다. 회의를 하는 과정에서도 지켜보면, 여성들이 발언을 하면 ‘조왕할망이 시끄럽게 떠들면 집안이 망한다’라는 말을 서슴없이 표현하고, ‘너희들은 무슨 말이 그렇게 많냐, 목소리가 왜 이렇케 그냐’라는 식의 비하발언도 하고, ‘집에서 밥이나 하지’ 이런 말까지도...” 이는 분명히 월정리 뿐만 아니라, 제주 전체 마을회 내에서 여성이 처한 현실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해녀들의 월정리 하수처리장 공설 증사로 인한 갈등은 이처럼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로 얽혀 있다. 갈등은 해소되지 않았다. 눌리고 뭉쳐졌을 따름이다. 뭉쳐진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가야 한다. 그리고 5년 동안 싸워온 해녀들의 설움 해소는, 월정리 바다 생태계 회복에 달려 있다. 마을 담벼락의 벽화가 아니라. 마을회관 신축이 아니라. 바닷속 우뭇가사리에. 소라들에. 문어와 전복에. 월정리 해녀들이 들었던 피켓 문구, "우리는 바다입니다". 정말이다. 제주도는 벽화마을 조성보다, 마을회관 신축보다 먼저 월정리 바다 환경 보전을 위한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2023제주해양포럼 '월정리 하수처리 증설을 둘러싼 갈등과 과제' 토론. 왼쪽부터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윤상훈 전문위원, 제주투데이 조수진 기자, 월정리 김은아 해녀, 강정평화네트워크 엄문희 활동가.(사진=김재훈 기자)
2023제주해양포럼 '월정리 하수처리 증설을 둘러싼 갈등과 과제' 토론. 왼쪽부터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윤상훈 전문위원, 제주투데이 조수진 기자, 월정리 김은아 해녀, 강정평화네트워크 엄문희 활동가.(사진=김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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