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난개발과 환경 오염 이슈에 대해 더이상 깜짝 놀라지 않는다. 관련 이슈는 "또 그 얘기?" 라는 말과 함께 옆으로 밀린다. 경각심이 마비되고 있다는 징후들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제주투데이는 [헐! 제주] 코너를 통해 제주의 다양한 환경 문제를 예민하게 바라보고자 한다. [헐! 제주]에 싣는 기고는 '생태적지혜'와 '프레시안'에 함께 게재된다.<편집자 주>

"복지현장에서 오랜 시간 활동하다 제주에 귀향해 현재는 제주에서 녹색 정치를 만들어가기 위한 활동을 주로 하며 제주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사진=김순애 제공)
"복지현장에서 오랜 시간 활동하다 제주에 귀향해 현재는 제주에서 녹색 정치를 만들어가기 위한 활동을 주로 하며 제주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사진=김순애 제공)

# 장면1 2018년 비자림로 도로 확장을 명분으로 30년 이상 수령의 나무 1000여 그루가 베어지자 많은 시민들이 확장공사를 반대하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비자림로에 섰다. 지나가는 차들 중 일부는 피켓을 든 시민들을 응원했지만 일부는 공격적으로 경적을 울려대거나 "반대할 거면 자기 동네에서 하지 왜 남의 동네에 와서 도로 공사 못하게 막고 있냐"고 소리를 지르며 지나갔다.

# 장면2 비자림로 공사구간에 환경영향평가서에는 없다고 한 멸종위기종들이 여러 종 발견되면서 공사가 멈추자 관련 내용을 다룬 인터넷 신문 기사에는 ‘곤충이나 새나 나무보다 사람이 먼저다’, ‘건설경기 최악에 지금 당장 먹고살기 힘들어 죽겠는데 환경 타령하다 굶어 죽으라는 소리냐’ ‘환경 타령 보호종 타령 그만하고 무슨 일이든 일 좀 해서 경제 좀 살려보려고 노력해라’ 등의 댓글이 달렸다.

# 장면3 지난 10월 21일 제주도립미술관 중앙정원에서 ‘비자림로 도로구역 결정 무효확인 소송’(이하 비자림로 소송)을 내용으로 모의재판이 열렸다. 팔색조, 애기뿔소똥구리, 으름난초, 고사리, 삼나무 등 비자림로에 서식하고 있는 동식물의 형상을 머리에 쓰거나 몸에 두른 사람들이 본인이 쓰고 있는 동식물들을 대변하며 모의재판의 원고로 참여했다. 대변자 역할을 하는 참여자들은 인간들이 동식물의 서식지에 폭력적으로 침입해서 인간 마음대로 동식물들을 내쫓고 서식처를 파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인간들이 법정보호종 보호대책이라며 내세운 강제이주 방안 역시 철저히 인간 중심 관점에서 나온 것이라고 비판했다. 삼나무는 베어내도 되는 나무로 규정하고 일부 다른 나무들 180여 그루는 베지 않고 옮겨 심은 것에 대해서도 그 기준을 누가 정하는 것인지 따져 물었다.

세 가지 장면은 비자림로 공사를 찬성하는 이의 목소리, 비자림로 공사를 반대하는 이의 행위, 인간의 상상을 통해 그럴 것이라 짐작된 비자림로에 사는 동식물들의 목소리로 구성된다. 첫 장면에서는 비자림로 공사 구역에 살고 있어야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논리가 작용하지만 그 자격은 인간에 국한되고 있다.

 '비자림로' 모의재판(사진=김순애 제공)
 '비자림로' 모의재판(사진=김순애 제공)

두 번째 장면에서는 인간의 생존에 가장 필요한 것이 경제이며 경제를 위해서라면 비인간의 생존 따위는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그대로 드러난다. 세 번째 모의재판 장면은 현실에서 불가능한 판타지에 가깝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자연물에 대해서, 혹은 자연물의 후견인에 대해 원고 자격을 인정한 사례가 전문하기 때문이다. 자연물 뿐 아니라 인간에 대해서도 원고자격은 지극히 협소한 범위 내에서 인정된다.

한국의 사법체계에서 환경 관련 소송의 원고자격은 지극히 제한적이며 이는 환경 소송에서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장애물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환경 이슈들은 행정 소송 등의 방법을 택하고 있다. 법원을 향해 계속 문을 두드리다보면 현재의 법체계에 균열이 생기고 새로운 법 논리가 만들어지지 않을까하는 기대 때문이다.

비자림로 소송은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1심은 원고로 참여한 이들 10인 가운데 9인에 대해 원고자격을 인정하지 않고 청구를 각하했다. 제주지방법원은 그들의 원고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 사건 환경영향평가 대상지역 밖에 거주하고 있는 바(...)환경영향평가 대상지역의 환경이 훼손될 경우 위 원고들이 일반국민의 지위에서 갖게 될 보편적 상실감이나 안타까움을 넘어 그 처분전과 비교하여 수인한도를 넘는 환경피해를 받거나 받을 우려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결문에 적었다.

법원은 원고 측이 주장하는 헌법상의 기본권인 환경권에 대해서도 환경의 내용과 범위, 권리의 주체가 되는 권리자의 범위가 명확하게 정립된 규정이 없기에 개개의 국민에게 직접적으로 구체적인 권리를 부여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단순하게 정리한다면 첫째, 소송을 제기한 원고들이 비자림로 공사 구간 내에 살지 않고 있어서 참을 수 있는 한도를 넘은 피해를 받을 가능성이 없기에 원고 자격을 인정하기 어렵고 둘째는 헌법에 보장된 환경권에 따라 원고 자격을 주장해도 환경권을 구체화한 법률 규정이 없기에 인정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법원에서 규정하는 ‘참을 수 있는 한도를 넘은 피해’는 재산적 피해를 뜻하거나 구체적이고 직접적이어서 입증할 수 있는 피해를 뜻한다.

법원은 장면1과 장면2에서 제기된 주장처럼 목소리의 자격을 해당 지역의 거주 여부, 경제적 측면에서 손해 발생 여부로 한정하고 있다.

하지만 비자림로를 확장하기 위해 수천 그루의 나무를 베어낸 결과 제주의 온실가스 흡수 기능이 줄고 오히려 배출이 늘어나게 되면서 오는 피해, 비자림로에 서식하는 10여종의 멸종위기종의 서식처를 훼손함으로써 멸종위기종의 생존 환경을 악화시키고 생물다양성을 위협하는 데서 오는 피해,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로 선정되었던 비자림로 경관을 파괴함으로써 입게 될 시민들의 정서적 피해 및 관광에 미칠 피해 등을 어떻게 입증해야 재판부가 구체적인 피해로 인정할까? 또한 그러한 피해와의 직접적인 연관성에 대해 원고가 어떤 증거를 내놓아야 재판부는 인정할까?

위에서 열거한 예상 피해들도 엄밀히 따지면 인간의 관점에서 해석된 피해이다. 비자림로 공사로 인해 가장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피해를 받은 당사자들은 공사 구간에 서식하고 있는 동식물들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부분에 주목한 환경단체들은 공사나 개발을 통해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될 자연물을 원고로 내세워 지속적으로 소송을 진행했다.

2003년 천성산을 관통하는 터널 건설을 저지하기 위해 천성산에 사는 도룡뇽을 원고로 내세운 소송, 2007년 황금박쥐 등 7종의 동물과 환경단체가 충주시장을 상대로 낸 도로확포장공사 무효 소송, 2008년 군산복합화력발전소 예정지에 서식하는 검은머리물떼새를 대리한 소송, 2018년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예정지에 서식하는 산양들의 소송 등이 그 사례지만 재판부는 한 번도 자연물의 소송 당사자 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법체계는 인간의 언어로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주체들을 전제로 하기에 지금 당장 인간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자연물과 미래세대는 지금의 법체계에서 어떤 권한도 없다. 현재의 사회 구조는 자연물의 목소리를 법적으로 문화적으로 배제한다. 또한 인간의 이익을 위해 자연을 폭력적으로 침탈하고 약탈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위에 비자림로 기사에 달린 ‘건설 경기가 어려운데 자연보다 경제를 살려야하지 않냐’는 댓글은 지금 사회 구조가 사람들에게 그대로 내면화되었음을 드러낸다.

하지만 모든 생명체가 서로 연결된 지구에서 약탈과 폭력에 기반한 관계는 한계에 도달했다. 과학자들이 예견하는 기후위기는 인간들에게 자연과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경고한다. 근본적인 변화의 모습은 지금과 같은 인식과 삶의 태도 위에서 그려질 수 없다. 상상력을 동반한 과감한 도전이 필요하다. 제주도에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자연물에 법인격을 부여해서 권리를 보장하게 하려는 생태법인 제정 움직임이 일고 있다.

 http://www.stopecocide.earth(사진=www.stopecocide.earth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세계적으로는 ‘생태학살(ecocide)’을 범죄로 규정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생태학살’은 ‘인간의 행위 또는 기타 원인에 의해 주어진 영토에서 생태계가 광범위하게 손실, 손상 또는 파괴됨으로써 해당 영토에 거주하는 거주자의 평화로운 향유가 심각하게 감소되거나 장차 감소되는 것”을 뜻하고 거주자에는 인간과 동물, 물고기, 새 또는 곤충, 식물종, 기타 살아있는 유기체 중 하나 이상으로 구성된 영토의 토착 거주자 또는 정착 공동체가 포함된다.

‘생태학살’의 개념에는 인간의 생명과 비인간의 생명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인간의 권한이 배타적이지 않다. 지금까지 인간 중심의 법체계에 대한 큰 도전이 될 것이다. 베트남, 우크라이나, 러시아 등 소수의 국가에서는 이미 생태학살을 범죄화했으며 프랑스 역시 유럽연합 중 처음으로 2021년 생태학살이라는 문구를 법에 넣었다. 네덜란드, 스코틀랜드, 벨기에에서 관련 법안 논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멕시코, 브라질에서 생태학살을 범죄화하는 법안이 제출되었다.

물론 이 법안이 쉽게 통과되기는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이미 많은 이들이 자연의 목소리를 배제하는 현대 사회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더욱 크고 많은 목소리로 변화를 촉구해서 법체계가 이 질문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 답하게 해야 한다.

참고 자료

김재윤(2022.4), ‘국제범죄로서 ‘생태살해(ecocide)죄’의 도입에 대한 검토’ 형사정책 통권 69호

더가디언 https://www.theguardian.com/environment/2023/aug/26/growing-number-of-countries-consider-making-ecocide-cr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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