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과 소년》(김홍모 만화, 딸기책방 펴냄)
《별과 소년》(김홍모 만화, 딸기책방 펴냄)

사람들은 왜 만화책을 좋아할까. 글이 적고 그림이 많아서일까. 읽다보면 웃음이 절로 끽끽 나와서 일까. 아니면 만화로 이야기를 풀었을 때의 느낌이 더 좋아서일까. 김홍모가 그린 만화는 세 번째다. 그가 쓴 작품도 글은 적고 읽다보면 재미가 있어서 웃음도 나오지만, 그림과 말투가 잘 어우러져서 이야기가 또렷하다.

나는 만화를 잘 보지 않았다. 아니 보려고 하지 않았다. 말풍선이 많은 만화는 생각하는 힘을 줄어들게 했다. 그냥 글만 읽으면 내 머리 속에서 여러 가지 상상을 준다. 말풍선을 읽으며 만화책을 보면, 재미있고 읽는 속도도 빠르지만 다 읽고 나면 뭔가 맥이 빠진 느낌이었다. 이 책은 달랐다. 왜 그럴까. 나는 이 책의 장점 세 가지를 꼽는다. 첫째는 작가가 어릴 때 살던 마을 묘사다. 참 아름답다. 둘째는 아이들끼리 다투다가도 서로 좋아하며 모험을 하는 모습이다. 따뜻했다. 셋째는 어릴 때 살던 마을이 더렵혀져서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잘 녹아있다.

이 책에는 일곱 편의 이야기가 실렸다. 똥 마려워도 참느라 낑낑대는 아이, 밤을 몰래 따다가 들킨 아이, 만화책 ‘보물섬’을 아주 좋아해서 훔치기까지 하는 아이, 좋아하는 아이를 만나자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이 그날따라 더 반짝반짝 빛나는 걸 느끼는 아이, 눈이 펑펑 내린 들에 강아지와 나가서 발자국으로 만화 속 주인공 태권브이를 크게 그리는 아이가 나온다. 만화를 보다보면 어릴 적 동심으로 푹 빠진다.

작가 김홍모는 어릴 때 경기도 연천군 전곡면에서 살았다. 남북이 갈라져서 생긴 38선 군사분계선에 있는 마을이다. 아침 6시면 미군 탱크가 지나간다. 작가는 ‘똘이장군’이라는 만화에서 이런 마을을 그린다. 어린이 텔레비전 만화 똘이장군는 한반도 북녘 통치자들을 죽여야 할 악마로 만들었다. 1986년 한반도 북녘에서는 금강산댐을 만들어 한반도 남녘을 물바다로 만든다고 했다.

당시 남한 정권은 이것에 맞서려고 ‘평화의 댐’을 만들려 했다. 금강산댐이 수문을 열면 한반도 남녘은 물바다가 된다고 했지만 모두 거짓으로 들어났다. 이 만화책에 나오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앞장서서 거짓 보도를 했다. 전두환 정권이 군사 통치를 할 때다. 어린 김홍모는 미군이 자기 마을과 우리나라를 지켜주는 사람들로 알았다. 먹고 싶은 것을 사먹지 않고 모은 돈으로 나이키 신발을 사고 싶었지만, 그 돈을 평화의 댐을 만드는 성금으로 낸다. 애국자가 된 듯이 좋아했다. 그땐 ‘똘이장군’이 김홍모 작가의 우상이었다. 어른이 되어서는 어떨까.

‘좁은 방’, ‘내가 살던 용산’, ‘빗창’, ‘홀’, ‘소요’같은 작품을 쓰면서 잘못된 정권에 저항한다. 작가가 이런 작품들을 쭉 쓸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나는 ‘별과 소년’을 읽으며 알았다. 그것은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과 어릴 때 마음껏 동무들과 뛰놀아서 그렇다. 지금 아이들은 점점 자연과 멀어지고 동무들끼리 뛰노는 일도 힘들다. 작가는 말한다. “게임기 하나 없었지만 놀 게 천지삐까리였다. 들로 산으로 강으로 모험을 떠나고 놀러 다니느라 매일 바빴다. 숙제를 안 해 가서 늘 혼나긴 했지만 노는 게 너무 좋았다.”

이 작품에 나오는 ‘한탄강’을 보자. 어릴 때 얼음을 타고 건너던 한탄강. 그곳은 공장에서 나오는 더러운 물로 더 이상 꽝꽝 얼지 않는다. 그 맑고 푸른 강은 사라졌다. 이제 어른이 된 김홍모 가슴에만 남아 있다. 한탄강만 그러겠는가. 사람들이 편하게 살고, 돈을 많이 벌겠다는 마음에 한반도 남녘 곳곳은 죽음의 땅으로 바뀌었다. 어쩌면 돈에 눈이 먼 사람들은 한반도 북녘 땅도 그렇게 만들고 싶을 것이다. 김홍모는 이제 안다. 한반도가 평화롭게 하나가 되려면 한반도 남녘이 먼저 사람과 자연이 조화롭게 사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 힘은 어릴 때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놀던 마음에서 나온다. 이 책을 읽으면 따뜻한 정이 샘솟는다.

글쓴이 은종복 씨는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 위치한 인문사회과학 책방 '제주풀무질'의 일꾼이라고 자기 자신을 소개한다. 책과 사회를 또박또박 읽어내려가는 [또밖또북] 코너로 매달 마지막 주에 독자들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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