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2023년의 단체’로 제주 연안에 서식하는 멸종위기종 제주남방큰돌고래들을 선정했다. 제주 남방큰돌고래는 130여 마리 가량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동안 제주에서 남방큰돌고래를 생태법인으로 지정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논의가 이어져왔다. 국내에는 생태법인이 전무하다. 현재 생태법인 관련 법 자체가 없다. 남방큰돌고래 생태법인을 지정하기 위해서는 생태법인 관련 법률이 국회에서 통과되어야 한다. 제주도는 법률안이 내년 4월 국회에 상정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남방큰돌고래가 생태법인으로 지정되면, 재단법인이나 사단법인처럼 엄연히 법적 지위와 권리가 있는 단체로 인정받게 된다. 동물이 법인으로 인정된다고? 낯설게 여겨지지만 고정관념일 뿐이다. 재단법인이나 사단법인도 사람이 아닌 재산-돈(재단법인)이나 사람들이 모인 단체(사단법인)에 법적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생태법인은 국내에서는 생소한 개념이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자연물이나 생태계에 법적 지위를 부여한 사례가 있다. 뉴질랜드의 환가누이강 생태법인이 대표적으로 거론된다. 국내에서 새로운 길이다. 올해 관련 법이 만들어지면 남방큰돌고래도 엄연히 법인격을 갖고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생태법인을 앞둔 남방큰돌고래의 심정은 어떨까. 다음은 남방큰돌고래의 가상인터뷰다.

제주 연안 남방큰돌고래 무리.(사진=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 제공)
제주 연안 남방큰돌고래 무리.(사진=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 제공)

-제주투데이 ‘2023년 올해의 단체’로 선정됐습니다. 가장 의미있는 활동을 단체로 뽑혔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조금 쑥스럽네요. 인간과 우리가 말이 잘 통하지는 않잖아요? MBTI 성격유형으로 따지자면 우리가 I 성향이 강해요. 그러다보니 직접 만나 얘기 나눌 기회가 많지는 않았죠. 하지만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시고, 2023년의 단체로도 뽑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지금 현재 제주 바다 상황은 어떤가요?

일단 기후위기를 피부로 느끼고 있어요. 아시다시피 우리는 겉옷을 따로 입고 다니지는 않으니까요. 물이 많이 따뜻해지고 있다고, 확실히 문제는 문제라고 저희끼리 얘기를 많이 나눕니다. 제주도 남쪽 바다에는 미역이나 톳 같은 해조류들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지경이에요. 우리도 이런저런 놀이를 즐기는데요. 가령, 미역을 지느러미에 걸고 헤엄치면 진짜 재밌거든요.

-...그게 그렇게 재미있나요?

그럼요. 올여름에 한 번 해보세요. 그런데 요즘 제주 남쪽 바다에 미역이 사라져가고 있어요. 미역이 지느러미에 걸고 다닐 수 있는 만큼 자라지도 않는 지경이에요. 검은 비닐봉지만 잔뜩 늘었어요. 그래서 요즘 애들은 비닐봉지를 가지고 놀기도 해요. 해조류가 없으니 간식꺼리로 삼을 물고기들도 줄어들었어요. 전복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고, 소라도 잘 보이지 않더라고요.. 갯녹음으로 인한 백화현상이 아주 심각해요. 걱정이 많이 됩니다.

-생태법인이 추진되고 있다는 소식은 들으셨죠?

고마운 소식입니다. 저희가 할 말이 많긴 하지만 말이 잘 통하지 않아서, 그냥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2016년 도두앞바다 하수처리장 무단 방류 사태 기억하시죠? 처리되지 않은 하수가 200일 이상 콸콸 쏟아져 나오는데... 어휴, 그 냄새 진짜 말도 못하겠더라고요. 몇몇 친구들은 그때 거기 지나가다가 피부 트러블도 생겼어요. 이때는 정말 제주도청 앞에 모여서 집회라도 열어야 하나 싶었어요. 또 바다에 버려지는 폐어구류가 많잖아요?

낚싯줄이 남방큰돌고래의 등지느러미의 살점을 파고 들어가고 있다.(사진=핫핑크돌핀스 제공)
낚싯줄이 남방큰돌고래의 등지느러미의 살점을 파고 들어가고 있다.(사진=핫핑크돌핀스 제공)

-낚싯줄도 있고요.

그런 것들이 지느러미에 엉키면 풀기가 너무 어려워요. 생각해보세요. 손이 잘 닫지 않는 등 가운데에 뾰루지가 하나 나서 가려우면 처치 곤란이잖아요?

-네. 아주 곤란한 일이죠.

근데 우리는 효자손도 없고... 나아가 지느러미에 낚싯줄이나 그물이 잘못 엉키면 떼어낼 수가 없어요. 평생 달고 다녀야 해요. 살을 파고 들죠. 목숨을 위협해요. 위험천만이죠. 친구들이 그런 일을 당할 때마다 사람들한테 폐어구 관리 잘 하라고 한 마디 하고 싶은데, 말이 안 통하니까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앞으로 우리가 생태법인으로 지정되면 이런저런 문제에 대해 우리 법인 사무실에서 대응할 테니, 조금은 마음이 놓여요. 생태법인을 추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사무실요? 직접 여러 작업들을 하는 게 아니었나요?

직접 하면 좋긴 한데... 요새 업무를 다 컴퓨터로 하잖아요. 아시다시피 우리 타이핑 속도가 1분에 3자 정도 되려나... 쉽지 않더라고요. 오타도 많이 나고. 사무실을 두고 전담 인력을 몇몇 고용하는 방식으로 해야겠죠. 우리가 직접 법인 관련 사무를 보는 건 아니고 일자리를 만들게 되는 거예요. 사실 바다에서 생존해나가는 것 자체가 우리의 역할이기도 하거든요. 기후위기 때문에 바다 살이는 팍팍하지, 제주도의 하수처리 문제는 여전하지, 바다 쓰레기는 계속 증가하지... 살아남는 것 자체가 난이도 높은 일이에요. 그러니 법적인 일이나 사무적인 일은 대리인을 두고 맡길 생각입니다. 우리는 바다에서 얼굴을 보여드릴게요.

핫핑크돌핀스 활동가들이 제주 바다에서 남방큰돌고래에 대한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핫핑크돌핀스 제공)
핫핑크돌핀스 활동가들이 제주 바다에서 남방큰돌고래에 대한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핫핑크돌핀스 제공)

-특별하게 고마운 사람들이 있을까요?

여러 사람이 떠오르는데요. 동네친구 찬스 좀 쓸게요. 우리가 즐겨 찾는 바다 가까운 곳에 핫핑크돌핀스 사무실이 있는데요. 제주에서 활동하는 친구들이거든요. 가장 많이 봐요. 2013년 제돌이를 제주 바다로 돌아오게 하는 데 힘쓰기도 했죠. 수족관에 갖힌 고래들을 해방하기 위한 노력도 많이 하고, 제주 바다 환경을 위해서 목소리도 많이 내고 있는 친구들이에요. 그리고 최재천 선생님 얼굴도 떠오르네요. 제주도 생태법인 제도화 실무단 위원장을 맡아서 많이 노력해주셨어요. 그리고 팬심이긴 한데... 우투더영투더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다들 보셨죠? 드라마에서 우리 얘기 해줘서 고맙더라고요. 대중적으로 우리가 많이 알려졌거든요.

-생태법인으로 지정되면 앞으로 꼭 하고 싶은 일들이 있을까요?

먼저 기회가 된다면 수족관에 갇힌 고래들을 해방하기 위한 운동에 함께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합니다. 오지랖이라면서 우리 사무실에서는 그런 일에 적극 나서는 데 반대할 수도 있겠죠. 많은 역할을 못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우리가 생태법인으로 지정되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 큰 힘이 될 것 같아요. 수족관에 갇혀 있다 간신히 돌아온 친구들에게 얘기를 들었는데, 정말 끔찍하더라고요. 힘 내라, 친구들아. 바다에서 만나자. 그리고 안타까운 생태계 파괴 현장이 한국에도 참 많거든요. 설악산 산양들도 떠오르네요.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 관련해서 말씀하시려는 거죠?

맞아요. 윤석열 정부 들어 강행되고 있는데... 산양들이 많이 걱정돼요. 그 친구들 MBTI도 완전 초 울트라 I거든요. 우리보다 훨씬 훨씬 내성적이에요. 케이블카가 들어서면 산양들이 스트레스를 엄청 받을 것 같아요. 휴... 혹시 그거 기억하세요? 2018년에 설악산 산양들이 케이블카 사업 허가 취소 소송을 냈었거든요. 그런데 법원으로부터 원고로 인정받지 못했어요. 소송을 걸 수 있는 자격이 없다고 본 거죠. 제대로 재판하기도 전에 기각당했어요. 그 얘기 전해 듣고서 얼마나 속상했나 몰라요. 일단 우리가 생태법인으로 지정되면 그런 친구들에게도 용기를 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힘내라, 산양아. 생태법인 2호 가즈아.

-독자들께 한 마디 부탁드릴게요.

생태법인이라는 제도가 생소하잖아요? 하지만 이런 일은 시작이 어렵지 막상 시작되면 금방 익숙해질 거예요. 우리가 생태법인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그래서 다른 멸종위기 동식물들에게도 용기를 줄 수 있도록 많은 관심 부탁드릴게요. 그리고 여러분, 2024년엔 모두 자연자연하세요.

-'자연자연하세요?' 무슨 말이죠?

딱 와닿지 않나요? 새해에는 자연을 더 많이 만끽하세요. 그런 취지에서 유행어로 밀어보려고 하는데요. 내년의 자연은 지금의 자연과 같지 않을 거거든요. 하루하루 얼마나 빠르게 악화되고 있는지 몰라요. 사람이 그걸 몸으로 깨닫게 될 때는 이미 많이 늦은 뒤일 거예요. 

-아... 네. 그 유행어가 먹힐까요?

그럼 이만. 지느러미에 걸고 놀 길다란 미역줄기가 어디 없나 좀 찾으러 가봐야겠어요.

-갑자기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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