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밭담(사진=고은희)
제주의 밭담(사진=고은희)

#제주 돌담 보존은 중요한가?

구불구불 끝없이 이어지는 검은 돌담길. '흑룡만리'라 일컬어진다. 밭에서부터 마을 내 주택 담벼락까지 현무암을 쌓아 올린 돌담 풍경은 제주의 고유한 지질-경관-문화적 특성이자 자원이다. 하지만 개발 사업과 도시화로 인해 그와 같은 풍경을 잃어가고 있다.  우후죽순 건물들이 들어서며 돌담을 허물고 있다. 돌을 쌓아 밭의 경계로 삼은 밭담은 그나마 사정이 좀 나은 편이다. 자연마을 내 옛집들의 돌담은 시멘트, 블록 담벼락으로 빠르게 대체되었다.

돌담이 중요한 유산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이뤄지고 있다. 제주 돌담은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를 꿈꾼다.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열린 학술 세미나에서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무형문화재로 먼저 지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안 될 것은 없다. 제주 밭담은 이미 2014년 유엔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됐다. 하지만, 그런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는 것이 곧장 돌담 보존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제주도도 돌담을 문화자원으로 인식하고는 있다. 돌담 관련 축제를 열기도 한다. 하지만 제주도가 추진하는 돌담 관련 사업 내용을 보면 행사와 축제, 돌담 홍보에 방점을 찍고 있다. 돌담 조성 지원 사업이 아니다. 주객이 전도된 양상이다. 왜일까. 제주도에 돌담이 많아도 너무 많기 때문일까. 유엔 세계중요농업유산이나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는 것과 돌담 정비를 통한 보존 사업 중 무엇에 집중해야 할까?

전라남도 신안군 돌담(사진=신안군 제공)
전라남도 신안군 돌담(사진=신안군 제공)

#전국 1호 '돌담 조례' 제주가 아니라 전남 신안군이 제정

여기, 돌담 보존에 진심인 지역이 있다. 물론(?) 제주도는 아니다. 바로 전라남도 신안군이다. 돌담을 중요한 문화, 경관 자원으로 인식하는 걸 넘어 돌담의 보존을 위해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신안군은 '돌담 보존 및 정비 지원에 관한 조례'를 2019년에 제정했다. 이는 조례명에 '돌담'을 담은 첫 사례다. 신안군수는 조례에 따라 매년 '돌담 보존 및 정비 지원계획'을 짜고 시행해야 한다.

조례는 '기존 돌담의 보존 및 정비', '신규 돌담의 설치', '기존의 시멘트·벽돌·블럭 담장 등을 돌담으로 개축 및 정비' 등 군수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업에 대해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선명하다. 신안군은 조례를 만든 해, 돌담 정비 및 신규 돌담 설치 지원 사업에 3억원을 투입했다. 기존 시멘트 또는 벽돌 담장을 돌담으로 바꾸거나 주택, 마을 주변의 신규 돌담 설치하는 경우 군청이 나서서 금전적으로 지원했다. 제주도가 돌담 축제나 이런저런 유산 리스트 등재에 공을 들이는 사이에.

신안군 다음으로 돌담을 조례명에 단 지역은 전라남도 진도군이다. 진도군은 '돌담·마을공동우물 보존 및 정비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시행 중이다. 진도군 역시 신안군처럼 매년 진도군 돌담(과 마을공동우물)의 보존 및 정비를 지원할 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한다. 조례는 매년 수립하는 계획에 보존 및 정비 사업 대상지, 지원 규모 및 절차 등을 담도록 했다.

전라남도 신안군 전경(사진=신안군 제공)
전라남도 신안군 전경(사진=신안군 제공)

#제주도, 돌담 보존 및 정비 조례 없어

제주도의 조례는 어떨까. 조례명에 '돌담'을 넣은 조례는 없다. 신안군과 진도군처럼 돌담을 개별적인 자원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이다. 돌담과 관련한 내용을 담은 조례는 두 건이다. 제주문화경관 보전 및 육성 조례, 제주특별자치도 전통가옥 등 건축자산 보존과 진흥에 관한 조례. 두 조례 모두 돌담 보존 및 정비 지원을 도지사의 의무로 두고 있지 않다. "지원할 수 있다" 정도다. 안 하면 그만인 셈이다. 도지사가 추진토록 한 사업을 보면 꽤나 거창하다. 돌담을 문화 자원으로만 인식하고 주민의 삶과는 동떨어져 있는 대상으로 여기는 듯하다.

1. 제주 전통가옥과 제주 돌담 등 공간환경을 보전하고 계승 ·발전시키기 위한 사업 

2. 제주 전통가옥과 제주 돌담 등 공간환경에 대한 역사적·학술적·예술적 가치를 발굴·교육하는 사업 

3. 제주 전통가옥과 제주 돌담 등 공간환경에 관한 기록 자료의 구축사업 

4. 그 밖에 도지사가 제주 전통가옥과 제주 돌담 등 공간환경의 진흥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업 

주민들이 생활하면서 체감할 수 있는 사업은 보이지 않는다. 기록 자료 구축, 돌담이 있는 공간환경의 가치를 발굴하고 교육하는 사업에 대해 도지사가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같은 사업들로는 무너져버린 돌담 자리에 가벼운 돌멩이 하나 얹지 못한다. 옛마을 주택가의 돌담 보수 및 정비, 돌담 신규 조성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조례를 제정할 필요가 있다. 주민의 생활 불편을 해소하고 돌담을 중심으로 마을 경관을 구축하는 것.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제주의 고유한 풍경을 살리는 일이다. 도시 미관을 살린답시고 관성적으로 담벼락에 벽화를 그려넣느라 세금을 쏟아붓는 것보다 더 미적인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 제주 '돌담 조례'를 제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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