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훈 제주지사(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오영훈 제주지사(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오영훈 제주지사의 3·1절 기념사에 대 일본 관련 메시지는 없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오염수 방류 시점이 다가오고 있는 만큼 그와 관련된 입장 표명을 할 법도 했다. 하지만 오염수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정도의 메시지조차 없었다.

이날 오 지사는 하루 만에 낙마한 정순신 전 국수본부장 아들의 학교폭력 사건을 꺼내들었다. 정순신 전 본부장의 아들이 제주 출신 동료를 상대로 '빨갱이' 운운하는 말을 내뱉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 지사는 그  개별 사건의 의미를 확대해석 하면서("일부 특권 세력과 일부 세력들은 제주를 이렇게 폄훼하고 있고 무시하고 있고 멸시하고 있습니다") 제주항일독립운동, 제주4·3으로 이어갔다. 그 중 4·3 관련한 내용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오 지사는 이날 "4·3 희생의 과정에서 우리는 화해와 상생의 새로운 가치를 대한민국에 전했고 세계 전 인류에게 전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당시 도민들이 "4·3 희생의 과정"에서 화해와 상생의 가치를 전할 목적으로 자발적으로 희생했던가. 결코 아니다. 국가적 조사 결과와 모든 논의 결론은 국가폭력에 의한 압도적 희생에 방점이 찍힌다. 4·3의 가치는 '4·3봉기 격문'에 담긴 항쟁 의지와 국가폭력에 대한 적극적인 문제 제기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이후 '4·3 해결의 과정'에 들어서면서 비로소 화해와 상생이 4·3의 '새로운 가치'로 얘기되고 있다.  실수로 '4·3 해결'을 '4·3 희생'으로 잘못 표현한 것일까. 그렇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이어지는 다음 발언은 더욱 의아하다.

"6·25 전쟁 당시에는 어땠습니까. 북한군이 침공해 들어왔을 때 그 어느 지역보다 제일 먼저 해병대로 자원입대를 해서 6·25 전쟁을 참전했던 우리의 삼춘네들이 있었습니다. 그 해병대들이 오늘의 제주를 만들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 대한민국을 있게 한 역사 제주인이 만들어 갑니다."

당시 많은 청년들이 '빨갱이'로 몰려 억울하게 살해당하지 않기 위해 해병대에 자원입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빨갱이'라는 낙인을 지우기 위해서. 살아 남기 위해서. 그런가 하면 해병대는 도민 학살에 가담한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 제주도 주둔 해병대 사령부가 예비검속으로 민간인들을 총살 또는 수장하는 데 가담했다고 밝혔다.

'제주예비검속사건(제주시·서귀포시) 진실규명결정서'(2010년) 결정요지는 1950년 7월 중·하순경, 8월 중순경 이뤄진 집단학살에 대해 이렇게 밝히고 있다. "제주시 및 서귀포지역 예비검속자들의 총살 및 수장 과정에서 제주도 주둔 해병대사령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해병대사령부는 당시 계엄령 상황에서 경찰의 치안 및 예비검속 업무를 직접 관장하고 있었고, 경찰로부터 예비검속자들을 인계받아 군 트럭을 이용, 제주읍 정뜨르비행장 또는 산지항 바다로 싣고 가 총살하거나 수장하였다."

1000명이 넘는 도민이 한국전쟁 직후 예비검속으로 목숨을 잃었다. 해병대도 가담했다. 제주의 아픈 역사다.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라는 표현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럼에도 오 지사는 왜 이런 표현을 썼을까. 기념사 전체 문맥을 보면 반공 이념을 내세울 수 있는 제주의 역사관을 제시하고자 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도민들이 해병대에 자원입대 했으니 도민은 '빨갱이'가 아니고, '빨갱이'가 아니므로 자랑스러워 해야 한다는 논지로 귀결된다. 결국 제주의 반공 역사관 구성을 위해 4·3이라는 역사를 편집한 셈이다.

이는 역사 인식 주체의 자리마저 내줘버린 격이 아닌가. 4·3 해결의 과정에서 제주도민은 역사 인식의 주체로 서기 위한 길을 걸어왔다. 4·3이라는 역사를 제대로 응시하면서 그 길을 걸어왔다. 고통스런 사실을 기반으로 한 역사 인식의 주체로 서기 위해서다. 그 길을 계속 따라가야 한다. 그 길은 자랑스러워 할 만한 길이다. 해방 이후 한 번도 잠든 적 없는 이념 재판관에게 제주의 역사관을  승인받기 위해 서둘러 4·3을 편집하고 자랑스러운 부분을 찾아내기보다는 흔들리지 않는 역사 인식의 주체로 온전히 서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오영훈 제주지사 104주년 기념사 전문

안녕하십니까.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오영훈입니다.

오늘은 104주년 3・1절 기념식입니다.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하는 그날의 외침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독립운동의 역사가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이 어떻게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당연하게 쓰고 있는 우리의 말과 글은 우리 선조들의 독립투쟁의 역사가 없었다면 지켜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당연하게 사용하고 있는, 모든 우리가 누리고 있는 권리도 투쟁의 역사가 없었다면, 선열들의 피흘림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우리는 항일 독립운동의 역사에서 제주가 차지하는 위치는 어떠한가에 대해서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미 1919년 3월 1일 5개월 전인 1918년 10월 무오법정사 항일운동을 통해 전국에서 가장 먼저 항일 독립운동의 기치를 내걸었던 자랑스러운 제주의 지역입니다.

그 이후 3・1 조천만세운동과 그리고 자랑스러운 제주 해녀 운동으로 이어진 선도적인 항일운동 역사였습니다.

이 선도적인 항일운동의 역사는 우리가 제대로 인식하고 우리 후세들에게 함께 간직해야 할 소중한 유산입니다.

그런데 최근 학교 폭력 가해자 그리고 그 부모의 제주에 대한 인식의 태도를 보면서 저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빨갱이, 돼지. 여전히 일부 특권 세력과 일부 세력들은 제주를 이렇게 폄훼하고 있고 무시하고 있고 멸시하고 있습니다.

임시정부의 수립의 사상적 기반이었던 기미독립선언서는 임시정부를 만들어냈고 항일 독립운동을 주도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임시정부는 대한민국 수립에 정부 수립의 헌법 전문에 그 법통을 계승하는 내용으로 담겨져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의 법통 임시정부 그 근간을 만들었던 것은 우리 제주인들을 포함한 대한민국 국민들이 만든 항일 독립운동의 역사적 가치가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항일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것은 헌법 전문에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제주의 자랑스러운 항일 독립운동의 역사를 다시 한 번 재조명해야 합니다.

무오 법정사 항일 운동도 제대로 격을 갖춰서 기념식을 진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올해부터 새롭게 격을 갖춰서 독립운동의 역사로 재조명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나가겠습니다.

그리고 항일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분들 중에 아직 서훈을 받지 못한 분들이 계십니다. 이분들에 대한 역사적 조명 작업도 차질없이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이끌어온 제주도의 역사는 비단 항일독립운동에만 있지 않습니다.

4・3 희생의 과정에서 우리는 화해와 상생의 새로운 가치를 대한민국에 전했고 세계 전 인류에게 전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세계에서 어느 나라에서 해보지 못했던 직권 재심. 그리고 군사 재판과 일반 재판에 대해서도 직권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내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는 화해와 상생의 기치를 내걸었던 제주의 성과였습니다. 대한민국의 새로운 과거사 모델 세계적인 모델을 우리 제주인들이 만들어 나간 겁니다.

 

6・25 전쟁 당시에는 어땠습니까. 북한군이 침공해 들어왔을 때 그 어느 지역보다 제일 먼저 해병대로 자원입대를 해서 6・25 전쟁을 참전했던 우리의 삼춘네들이 있었습니다.

그 해병대들이 오늘의 제주를 만들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 대한민국을 있게 한 역사 제주인이 만들어 갑니다.

당당하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대한민국 변방의 섬 제주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발전과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제주라는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함께해 주셔야 합니다.

외지에서 일부 세력들이 제주도를 폄하하더라도 우리끼리 단결하고 연대해야 합니다.

 

동네 심방 안 알아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김윤수 심방 이제 고인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동네 심방이라고 했지만 그분께서는 제주 칠머리 당굿을 제주 세계 인류 무형유산으로 국가 중요 무형문화재로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우리가 평범하게 봤던, 중요시하게 보지 않았던 일들이 세계사적인 가치가 있고 우리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더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세계가 평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분들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제주인인지 다시 한 번 판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한민국의 번영을 선도하는 제주인이 될 수 있도록 함께 연대하고 협력하는 3・1절 104주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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