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력발전기. (사진=제주특별자치도 공식 블로그)
풍력발전기. (사진=제주특별자치도 공식 블로그)

‘바람은 모두의 것이다’

10여년 전 풍력발전단지 건설을 둘러싸고, 사업자와 지역주민 사이에 갈등이 자주 발생하고 환경훼손 문제가 사회적으로 제기되자, 당시 환경단체 등이 ‘풍력자원 공유화운동’을 펼치면서 내걸었던 모토다.

제주도의 생명줄인 지하수와 마찬가지로 제주도의 자연적 특성인 ‘바람’도 소수 사(私)기업의 이익을 위해서 활용되어서는 안되는 ‘공공자원’이어야 한다는 취지다.

‘풍력자원 공유화운동’의 성과로 2012년 제주에너지공사가 설립되어 풍력발전단지 개발 및 운영을 전담하고 있으며, 풍력발전에 참여하는 민간사업자는 매출액의 7%를 기부하는 약정서를 체결하는 등 ‘풍력자원 공유화기금’이 설치되어 운용되고 있다.

‘에너지 공공성’을 실현하고, 도민이 주체로 나서 환경훼손위주의 ‘개발주의’와 결별하면서, 개발이익을 지역으로 환원하는 ‘민주주의’실현의 선도적 모범사례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에는 전기·가스요금 인상의 주요 원인으로 민간발전기업의 이익을 보장해주는 에너지체제의 시장화가 지적되고, 에너지 공영화가 주요 대안으로 제기되면서 제주도의 풍력 공유화사례가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 바람의 ‘공공자원’으로서의 성격, ‘모두의 것’이어야 한다는 정신과 그동안의 성과를 위협하고 훼손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공공주도의 풍력개발 투자활성화 계획(2.0)'
 '공공주도의 풍력개발 투자활성화 계획(2.0)'

오영훈 제주도정이 제출한 ‘공공주도 2.0 풍력발전계획’이라고 명명된 ‘풍력발전사업 허가 및 지구 지정에 관한 세부 적용기준 고시’ 개정의 추진이 그것이다.

올해 1월에 처음 내놓았던 내용은 공공성을 훼손한다는 지적이 거세자 철회했다가, 이에 대한 보완과 수정을 거쳐서 다시 제출하여 추진하고 있다.

내용의 핵심은 현재 제주에너지공사만을 사업시행예정자로 지정해 지구지정에 독점권을 부여해 온 것을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민간사업자와 공동으로 컨소시엄을 구성해 사업계획단계부터 참여하도록 허용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풍력발전사업의 공공성과 사업의 신속성을 높일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환경단체는 ‘공공성과 공익성’의 측면에서 문제가 없다고 평가되는 기존의 계획을, 불분명한 사업성과 사업추진의 속도만을 고려하여 변경한다고 하며 반발하고 있다.

결국 풍력발전에서 특정 민간사업자에게만 특혜를 부여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며, 주민들과의 갈등 및 환경훼손의 우려는 해소되지 못할 것이란 지적이다. 공공성과 공익성이 훼손되는 퇴행적 계획일 뿐이란 비판이다.

이러한 오영훈 도정의 기존 공공풍력개발계획에 대한 퇴행적 시도와 더불어 주목받은 것이 5월 25일 국회본회의에서 통과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이다.

제주도는 올해 3월에 분산에너지 활성화를 위한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이 법안의 통과를 위해 힘썼다. 그리고 분산에너지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위해 지난해 4월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산업통상자원부와 공동 수립한 지역 주도의 분산에너지 추진 기본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제주도가 특구로 지정되면 재생에너지 입찰제도가 도입되고, 재생에너지라는 새로운 시장이 열리게 된다는 바램과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결국 공공이 아닌 ‘민간’이 주도하는 재생에너지 시장의 활성화를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제주도는 분산에너지특별법이 통과된 이후 ‘전국 1호 분산에너지 특화지역’ 선점을 위한 체제 마련 및 규제 개선 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12일 오전 오영훈 제주도지사가 도청 기자실에서 에너지 전환 로드맵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오영훈 제주도지사가 도청 기자실에서 에너지 전환 로드맵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오영훈 지사는 “분산에너지 특별법이라는 제도가 갖춰진 만큼 이제 시장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며 “시장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 최초로 저탄소 중앙계약시장을 시범 도입하고 단기 필요물량인 65메가와트(260㎿/h)급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설비하고, 재생에너지 변동성에 대응하기 위한 실시간·예비력 시장과 재생에너지 입찰 제도 등 전력시장 제도개선 방안을 도입할 예정이라고 한다.

분산에너지의 본래 개념은 에너지 생산·소비, 공급·수요를 사회·공간적으로 일치시킨다는 점이다. 즉 에너지를 생산하는 지역에서 소비한다는 것으로 에너지 전환과 자립을 위한 접근법이다.

우리나라는 에너지를 생산하는 지역과 주로 소비하는 지역이 분리돼 있다. 에너지는 주로 지역에서 생산되지만 소비는 주로 서울, 경기 등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 중앙집중형 에너지 체계다.

따라서 분산에너지의 원래 개념을 살리려면 에너지자립도가 낮은 수도권지역은 에너지수요를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에너지 자립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은 비수도권지역은 석탄 등 화석연료와 핵에너지 중심의 지역에너지시스템을 재생에너지시스템으로 전환하여 에너지자립도를 낮춰야 한다.

2022년에 수립된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제주도의 발전설비는 총 1898메가와트()로 2019년 최대전력수요는 956의 두배에 이른다.

그 결과 최대전력수요를 초과할 경우에 풍력 등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출력을 제한하는 출력제한조치가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이에 따라 태양광, 풍력이 ‘과잉’이라는 억지선동도 전개된다.

분산에너지개념에 따라 제주도가 해야 할 조치와 방안은 현재 20% 정도에 머물고 있는 재생에너지 비중을 출력제한 조치가 없도록 하면서 더욱 확대하고, 화석연료를 원료로 하는 발전을 중단하는 로드맵이어야 한다.

이를 공공이 주도해 에너지 공공성의 강화와 지역사회에 이익이 환원되는 공익의 실현, 그리고 에너지의 혜택을 모두가 누리는 에너지 기본권을 실현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그러나 특별법이 통과된 이후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화와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논의에 집중되고 기존 에너지시스템의 전환에는 무관심하다. 제주도정처럼 ‘시장 확대’와 이에 기반한 에너지 생태계 조성에만 골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분산에너지의 활성화는 고사하고, 기존 집중화된 에너지시스템의 문제점은 그대로 유지된 채로 에너지시스템의 ‘시장화, 민영화’만 활성화되는 결과만 낳아 에너지 공공성은 더욱 후퇴되는 결과만을 낳을 뿐이다.

추자도 전경 모습
추자도 전경 모습

추자도에는 사업비 18조원 규모로 3GW급(3000㎿)의 세계최대 해상풍력발전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중이다. 현재 제주도 발전설비용량보다 1.5배, 수요에 비해서는 3배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다. 제주도민의 전기이용 자립과는 거의 상관이 없다.

풍력발전의 공유수면 점용 및 허가권을 둘러싸고 갈등을 겪고 있는 전라남도도 비슷할 것이다. 아마도 수도권의 전기수요를 충족하는 데에 대부분 쓰일 것이다. 기존 중앙집중형 에너지시스템을 분산에너지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것과도 전혀 관련이 없는 사업이다.

또한 이 사업은 외국자본이 주도하고 있다. 발전사업으로 인한 이익은 대부분 외국자본이 챙겨가고 일부의 떡고물만 지역주민에게 던져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환경적으로 끼치는 부정적 영향은 추자도 주민을 비롯한 제주도민과 바다생물을 비롯한 자연이 떠 안는다.

전라남도와 제주도가 갈등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으로 협력해서, 만약 이 풍력발전사업이 시행될 경우에 대비해 전라남도 영광의 핵발전을 중단하는 등 재생에너지시스템으로의 전환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이것으로 인해 발생하는 이익을 지역으로 환원하는 방안을 공동으로 마련해, 중앙정부를 압박하고 강제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논의가 전개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인 걸까?

점점 더 가속화하고 있는 기후위기에 대응해서 기존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시스템을 재생에너지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것은 필수적이며, 전 세계적인 추세이자 흐름이다. 

‘시장과 사기업’을 통해서는 이러한 과정을 촉진하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함을 1990년 이후 30년간의 과정을 통해서 증명된 바가 있다. ‘바람과 태양’을 돈이 되는 사업으로만 간주하는 사기업은 농지와 숲을 파괴하면서 바람과 태양을 사유화하는 데에 우선적인 관심을 가질 뿐이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주축이 된 ‘공공’주도하의 ‘정의로운 전환’을 통해 이뤄지는 민주적이고 생태적인 에너지시스템으로의 전환은 제주도에서 다시 더욱 강조되고 강화돼야 한다.

‘바람은 모두의 것’이란 모토는 기후위기를 낳은 과거의 에너지시스템을 청산하고 미래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새겨 나가야 할 지표이다.

<참고자료>
김동주. 제주도 풍력자원 공유화운동 분석 : 프레임과 레퍼토리를 중심으로. 인문학연구 20집. 제주대학교 인문학연구소. 2016
<성명서> 공공주도 2.0 풍력개발계획 강행추진을 반대한다. 제주환경운동연합. 2023.5.15.
이정필. 분산에너지 특별법, '전기요금 깍아준다'는 말의 함정.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2023. 6.

강동진 치과의사

제주도의 시골동네에서 마을주민들의 치과주치의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애쓰고 있다. 사람들의 건강권, 생명과 연결되어 있는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다. 기후위기는 인류생존의 먼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다. 성장제일주의에 갇힌 현 체제가 낳은 문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경험했듯 사람의 생명과 주거 등 인권과 깊게 연결되기도 한다. 한반도 최남단 제주도는 기후위기 최전선이다. 이러한 다양한 문제와 현상을 '기후정의'란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석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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